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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14. 출입자

[2016년 가을]

"출입자! 출입자!"라는 기계음이 울린다. 아직도 생경한 이 알림음은 엄마가 있는 요양원 입구의 벨을 누를 때마다 요란하게 울렸다. "아이고! 아드님 오셨군요!" 여느 때처럼 요양보호사 한 분이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입구를 지나면 좌우로 긴 복도가 있고, 좌측으로 돌아 공용 공간을 지나면 엄마가 배정받은 방이 있었다. 엄마는 최초에는 다른 입소자와 함께 쓰는 3인실에 배정됐으나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탓에 독실에서 머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엄마는 역시나 방에 있지 않고 공용공간을 배회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 싱긋 웃는다. "어머님이 아드님을 알아보는 것 같네요."라는 요양보호사 분의 희망찬 해석에 말도 안 된다는 날이 선 반응을 하고 싶었으나 이내 참고 어색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엄마가 거주하고 있는 이곳은 나름 고심 끝에 결정한 시설이었다. 1차로 온라인에 공시되어 있는 기관 평가와 시설안내를 살폈고 그 후 세 곳을 추려 직접 방문해 봤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엄마의 특성상 규모가 너무 큰 요양시설은 아무리 공식적인 평가가 좋아도 보낼 수가 없었기에 소규모 가정돌봄 시설을 찾아 헤맸는데 그 결과가 현재 엄마가 입소한 시설이었다. 입소한 사람은 30여 명 내외였는데 원장님과 아내 분, 조무사 한 명, 사회복지사 한 명, 그리고 상주 요양보호사 5~6명 등 환자 수 대비 직원의 수가 유독 많다는 것이 시설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작용했다. 시설 입소 초반 엄마는 역시나 적응에 애를 먹었다. 야간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거나 본인을 씻겨주는 요양보호사를 때리는 등 부적응 증상을 계속 보였다. 오죽하면 엄마를 둘러싸고 일선에서 케어하는 직원들과 원장님 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까지 발생한 눈치였다. 직원들 입장에선 엄마처럼 젊고 힘이 있는 환자를 돌보는 게 쉽지 않았고, 원장님 입장에선 요양원에 한 사람이라도 더 입소시켜야 운영이 순탄해지다 보니 발생한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엄마는 본인을 둘러싼 상황을 인지한 것인지 언제부턴가 폭력적인 모습을 멈추었고 새로운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한 달 만에 찾은 요양원은 이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들어와서 엄마와 대화를 나눈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점심시간을 위해 요양원의 모든 환자들이 공용공간으로 모였다. 그제야 다른 환자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살피게 됐는데 역시나 엄마를 제외하곤 70~80대 노인들이었다. 그렇게 노인들에게 둘러싸여 식판을 앞에 두고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보니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 방법이 과연 최선인가를 고민하며 상념에 빠져있던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네 엄마, 불쌍해." 80대 정도 돼 보이는 할머니였는데 갑작스레 모친이 안쓰럽다는 표현을 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노인분에게 날 선 반응을 하고 싶지 않아 어색한 미소로 답을 대신하던 그때, 노인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우리 딸 보고 싶어..."라며 울먹이던 그분은 어느새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당황한 나를 향해 달려온 요양보호사는 할머니가 치매가 있어서 그렇다며, 본인이 케어할 테니 엄마와 시간 보내라며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노인을 피해 엄마와 공용공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밥투정하는 아이처럼 숟가락을 입으로 향하기보단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 요양보호사가 다가와 본인은 엄마에게 직접 먹여준다고 팁을 알려줬다. 그녀의 말에 따라 숟가락을 들어 아이에게 밥을 먹이듯 한 숟갈, 한 숟갈 엄마의 입에 밀어 넣어봤다. 조용히 입을 벌려 한 입씩 받아먹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이제 노화의 정점을 지나 아이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어찌 식판을 비운 후 소파에 앉아 엄마와 대화를 시도해 봤다. 아쉽게도 엄마는 이제 본인의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고 짧은 대답이나 가벼운 끄덕임을 통해 대화하는 시늉을 했다. 다시 한번 엄마의 시간이 거꾸로 흘러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쯤 더 머물었을까. 속상함을 뒤로하고 어두침침한 요양원을 빠져나왔다. 엄마의 퇴행과 생활환경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후 우울함에 속이 문드러진 나와는 달리 요양원 밖 가을 하늘은 속도 없이 맑고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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