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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13. 이기적인 결정

[2016년 여름]

엄마가 잠든 초저녁, 남자 셋이 거실에 모여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 한참 정적이 흐른 후 나는 다시 입을 떼었다. "형,  방법이 없다니까? 형이나 내 인생 포기할 거야? 엄마가 그걸 원할 거라고 생각해?"라는 나의 부연설명에도 형은 울먹이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빠는 본인의 아내를 둘러싼 자식들의 논쟁에 차마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진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냉정하면서 현실적인 나의 주장에 못 이기는 척 지지를 표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나는 엄마를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남은 가족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요양원에 앞서 다양한 대안서비스를 이용해 봤다.  그중 하나가 가정에 방문하여 치매환자를 돌봐주는 방문요양서비스였다. 치매 환자인 엄마를 돌보는 나에게는 하루 중 유일한 탈출구였다. 요양보호사(이하 보호사)라고 불리는 아주머니가 반나절 혹은 그 이상 엄마를 케어해 줬는데 그 시간만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가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사는  방문에 자신이 얼마나 경력이 오래됐고 다양한 환자를 돌봤는지 모른다며 일종의 자기 PR을 했다. 또한 엄마의 나이와 상황을 듣곤 내 조카뻘인데 이런 질병을 겪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눈시울까지 붉히는 모습이었다. 첫날 집을 나서며 불안한 마음에 엄마의 특성이나 주의사항 등을 꼼꼼히 전달했으나 보호사는 다시 한번 본인의 경력을 자랑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초반 몇 주간은 큰 이슈가 없이 잘 흘러갔다. 내 눈엔 과하게 보일 정도로 큰 소리를 쳐서 불안했는데 괜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모든 인생 드라마가 그렇듯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보호사의 전화가 잦아졌다. "이게 없다. 저게 없다." 하며 소소한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하더니 특정 시점부터는 나에게 엄마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가 다루기 좀 힘들어. 이 정도 받으면서 엄마 돌봐줄 사람 거의 없을 거야."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싶었지만 거기까진 참았다. 그런데 보호사의 기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보호사가 집에 오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됐을까? 공부하는 자료를 두고 와서 잠깐 집에 들러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현관문과 중문을 차례로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눈앞에서 후다닥 움직였다. 낮잠을 자느라 눈이 반쯤 감긴 보호사였다.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에 적잖게 놀란 눈치였으나 아무 일도 없는 듯 "엄마는 잘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하는 그녀의 대답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거실에 켜져 있는 TV, 탁자 위에 먹다만 과자, 베개와 이불까지 하루이틀을 이렇게 보낸 솜씨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엄마는 부엌 수전 앞에서 손을 닦고 있었는데 퉁퉁부은 손을 보니 족히 몇 시간은 반복한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 시간을 보내시는 거예요?"라는 질문에 보호사는 부정으로 일관했다. 더 물어봐야 소용이 없음을 느낀 나는 원래 목적대로 책 몇 권을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의심이 생긴 나는 그 후 몇 주간 중간중간 집에 방문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예상대로 보호사는 드라마와 낮잠을 본인의 주 업무로 삼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방문요양서비스는 중단되었다.


가정 돌봄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9시부터 6시까지 시설에서 환자를 돌봐주는 주간보호서비스도 활용해 봤다. 잘 적응하길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과 달리 엄마는 새로운 시스템을 격렬하게 저항했다. 아침마다 시설에 가긴커녕 집 앞에 도착한 통원버스에 오르는 것조차 거부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이용해 보기도, 때론 물리력까지 동원해서 시설로 보내려는 노력을 했으나 그 결과는 엄마의 욕설과 출근하는 동네주민의 불편한 시선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몇 년간 엄마의 케어를 담당했던 내가 취업에 성공하며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자식의 취업을 격하게 반기는 게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지만 우리 가족은 기쁨보단 엄마의 돌봄 공백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요양원 입소였다. "그래, 엄마도 본인 때문에 자식들 미래가 망가지는 것을 원하진 않을 거야."라는 혼잣말과 함께 나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의 독립, 엄마의 가출, 폭력, 위생관리 등 그 이유를 찾자니 끝도 없이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핑계들을 댔지만 사실 나는 지쳐있었다. 엄마, 가족, 고향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 엄마의 남은 여생에 대한 의사결정에 엄마는 없었다. 


아빠를 설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설득이라기보단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다. 몇 년간 이어진 엄마의 치료과정에서 항상 멀찍이 물러서 있었단 아빠였기에 내 의견에 쉽게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아빠는 진작부터 요양원을 생각했으나 차마 입에서 꺼내지 못한 채 자식들의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오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형이었다. 다른 모든 면에서는 아빠와 비슷한 형이었지만 유독 엄마에 관련해선 감정적인 대응을 보였다. 엄마를 재우고 난 그날 저녁도 형은 눈물로 나와의 대화를 채워갔다. 완강한 형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우리 가족에게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사실상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엄마의 요양원 입소는 이렇게 이기적인 나와 이에 동조한 가족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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