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11. 타인의 시선

[2015년 겨울]

엄마의 가출 사건 이후 현관으로 나가는 중문에는 잠금장치가 하나 더 생겼다. 형의 늦은 귀가와 음주는 안타깝게도 멈추지 않았으나 그 일을 기점으로 이전보다는 아빠의 눈치를 보며 집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였다. 겨울이 되면서 취준생이 된 나는 취업을 위해 각 종 시험을 준비했어야 했다. 처음에는 잠금장치만 믿고 집을 비우는 모험을 해보았으나 마음이 불안해 이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에서 공부를 할까도 싶었으나 마치 어린아이처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엄마의 존재가 있는 한 의자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도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리를 굴리다 보니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방문요양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득이 높지 않은 우리 집의 형편 상 국가의 복지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에 공짜는 없었다. 한 달에 몇십만 원 수준의 서비스를 세금으로 지원받는 것이었으나 이를 위해 거쳐야 할 단계가 너무 많았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 누군가의 도움 없이 공무원이 요구하는 복잡한 서류를 준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편하고 싶다는 이기심이 생전 처음 해보는 서류 구비를 마무리하도록 이끈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내 입장에선 하루 반나절이라도 누군가 와서 엄마를 돌봐준다면 미래를 도모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모든 서류절차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보호자 교육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안내받은 일정에 맞춰 교육장소에 도착한 나는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시련을 맞이해야 했다. 회의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맞이한 건 삼촌, 고모뻘인 다른 보호자들이 나에게 보낸 당황스러운 눈빛이었다. 당황으로 시작한 그들의 눈빛은 놀람, 연민 등으로 발전해 나갔고 한편에선 나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쑥덕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이 낯설진 않았다. 엄마와 함께 병원을 다니다 보면 간호사부터 다른 보호자, 심지어 몸이 아픈 환자까지 비슷한 눈빛을 나에게 보내곤 했다. 그래도 병원을 갈 때는 나름 마음에 준비를 하기에 타인의 관심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교육 회의장에서 맞이한 그 눈빛들은 예상을 못 했기에 마음을 후벼 팠다. 어찌어찌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처음으로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더 힘든 일도 많았으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때문에 모멸감을 느끼고 나니 삶에 대한 회의마저 들었다. 상처가 너무 컸던 걸까? 중년 어른들에 대한 나의 이유 모를 반감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전 11화 EP 10. 새벽 나들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