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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10. 새벽 나들이

[2015년 가을]

자정이 다돼가는데 형은 아직도 집에 오지 않았다. 옆에 앉아 TV를 보는 아버지는 "이 XX는 또 집에 안 기어들어오네!"라고 씩씩거리고 있다. 순간 형의 입장과 상황을 대변해보려 했으나 어차피 아버지에게 먹히지 않을 걸 알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와 형의 갈등은 꽤나 오래되었다. 말투, 사고, 행동 등등 너무 비슷한 두 사람이지만 서로 간의 양보는 없었다. 사실 각자의 입장을 들어보면 왜 화가 나는지 꽤나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장남인 형에 대한 기대가 많아 보였다. 당신의 생각과 기준에 맞춰 장남이 움직여 줬으면 하는 눈치셨으나 형은 그러한 요구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요구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엇나가는 모습은 마치 학생주임에게 반항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태도와 비슷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됐고 언젠가부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겐 형의 입장을, 형에겐 아버지의 입장을 대변하여 설명하려는 노력을 했었으나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 또한 둘의 관계 회복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형이 빨리 결혼해서 독립하길, 그래서 이 상황이 끝나길, 당시엔 그게 나의 유일한 기대이자 희망이었다.


그날도 형은 술에 취해 새벽 언저리에 들어왔다. 인기척을 느꼈으나 낮부터 엄마와 씨름을 했던 나는 형에게 짜증을 낼 여력도 없어 다시 잠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깊은 잠에 빠졌을 무렵 누군가 고함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야! 엄마 없어졌어!"라는 형의 외침에 일어났으나 아직 현실인지 꿈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술이 덜 깨 벌겋게 달아오른 형의 얼굴과 분노와 당황이 섞인 아빠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이 상황이 현실임을 직시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설명한 상황은 이랬다. 새벽에 술 취한 채로 들어온 형은 현관으로 나가는 중문을 열어둔 채로 본인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화장실을 다녀오던 아빠가 엄마의 가출을 확인했다는 이야기였다. 현관 중문을 닫는 것은 엄마의 가출을 막기 위한 불문율이었으나 이것이 깨진 첫날, 엄마가 새벽에 나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더 이상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남은 세 식구는 엄마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빠는 집 주변을 다시 돌기 시작했고 나는 술 취한 형을 대신해 형의 차를 끌고 좀 더 큰 범위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형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는데 멀리 차에서 보인 그 모습은 엄마를 찾으려는 움직임인지 술을 깨기 위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한 시간쯤이 흘렀을까. 가족끼리는 해결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게 됐다. 신고 후 직급을 알 수 없는 경찰 한 사람이 집 근처에 있는 역 앞에서 나와 형을 불러 세웠다. 우리의 신원, 실종상황 등을 계속 설명하였는데 이쯤 되면 질문이 끝나야 하는데 경찰은 끝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은 우리가 치매에 걸린 엄마를 버린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음을 느꼈다. 의심의 눈초리를 느끼고 나니 왠지 몸이 더 뻣뻣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의가 아님을, 결백함을 설명하고 있자니 도리어 신고를 안 하는 게 나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날카로운 질문과 간절한 답변의 공방이 지속되고 나서야 형제의 소명을 받아들인 형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봉고차 한 대가 등장했고 소대급으로 되어 보이는 의경무리가 내렸다. 앳된 얼굴에 몇몇은 눈곱도 떼지 못한 모습을 보니 신뢰감이 들진 않았으나 새벽 중 엄마를 찾기 위해 출동해 줬다는 사실에 마음속 불신은 금세 고마움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이어진 몇 시간의 수색에도 엄마에 대한 소식은 요원했다. 계절 상 겨울을 향해가고 있었기에 새벽공기가 꽤나 차가웠는데 외투하나 없이 나간 엄마의 생사여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만 생각에 빠져 몇 시간째 차를 몰고 다니던 그때 형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야! 엄마 찾았어!"라는 형의 외침에 안도감이란 단어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차를 돌려 집에 돌아가보니 엄마는 퀭한 눈과 핼쑥한 볼로 나를 맞이했다. 엄마는 집에서 10분쯤 떨어진 다리를 걷다가 경찰에게 발견됐고 형은 눈물로 돌아온 엄마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엄마의 실종으로 수면 밑에 있던 형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술을 먹고 늦게 왔냐, 현관 중문을 닫지 않았냐 등 질문으로 위장한 비난을 쏟아내 봤으나 눈이 퉁퉁 부은 체로 괴변을 늘어놓는 형의 모습과 다리가 아프다며 옆에서 툴툴대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들어 비난은 금세 웃음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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