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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12. 부러진 안경

[2016년 봄]

"이거 좋아."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웃음을 지어본다. 커피를 바라보며 커피라는 단어를 못 떠올려 대명사를 쓰는 것이 안타까웠으나 아직은 자신의 선호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카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진작 엄마를 데리고 나오지 못 한걸 후회하게 됐다. 원목 인테리어, 감각적인 조명 등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에 딱 맞는 장소였다. 사실 커피 자체는 치매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커피 향 가득한 이곳에 온 건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엄마의 치매 치료를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 다 되어간다. 장기간의 치료에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대학병원에서의 치료가 소용이 없음을 느낀 우리 가족은 이제 작은 개인 의원급으로 옮겨 적극적인 치료보단 약을 처방받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약을 받아와도 이제 투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약을 먹지 않거나, 물과 함께 머금고 있는 등 기본적인 삼킴 동작조차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위생관리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간 엄마가 한 시간 가까이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외칠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난 문고리를 부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용변은 바닥에 여기저기 흘러있는데 바닥이나 몸은 닦지 않고 양손만 계속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슬픔에 괴로워할 여유도 없이 문이 열린 것을 본 엄마는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하며 문을 닫아버렸다. 상황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나는 문을 강제로 열고 엄마를 붙잡아 씻기기 시작했다. "야이! 썅썅썅! 새끼야!"와 같은 엄마의 외침에도 나는 목욕하기 거부하는 아이를 다루듯 힘으로 엄마의 몸을 닦아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아들이 자신의 몸을 닦는 게 수치스러웠던 엄마는 내 뺨을 날렸고, 그 과정에 쓰고 있던 안경이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엄마에게는 할 수 없는, 혹은 해선 안 되는 쌍욕을 퍼부어버렸다. 순간 엄마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는 욕구까지 들었으나 이내 이성을 찾고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5분이 흘렀을까. 엄마를 씻기고 내보낸 화장실에는 안경이 부러져 보이는 건 없고, 꼬집힘에 살갗이 뜯긴 내가 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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