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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9. 2023

EP 16. 빨리감기 버튼

[2017년 봄]

약을 바꾸고 나아진 듯 보였던 엄마의 걸음걸이는 이제 영영 돌아오지 않는 모양새다. 이 약 저 약 바꿔가며 증상 악화를 방지하고자 노력했으나 특정 시점을 지나자 걸음뿐만 아니라 다리를 드는 행위 등 전반적인 운동능력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자세 또한 무너졌는데 엄마가 서있는 모습을 보면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 게 마치 피사의 사탑을 연상케 했다. 더불어 의사표시를 위해 뜨문뜨문 뱉었던 단어는 어느새 알아들을 수 없는 "싸싸싸! 기기기!"와 같은 의성어로 점점 대체되었다. 언어능력을 잃어버리자 너무 활발해서 문제였던 엄마의 성격은 언젠가부터 소심한 여중생 같은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증상이 더 악화되기 전에 엄마와 바깥공기를 쐬겠다는 요량으로 형과 함께 요양원을 방문했다. 절뚝거리는 엄마를 데리고 시설 밖으로 나오니 봄을 시샘하는 겨울의 추위가 아직 남아있었다. 서둘러 엄마에게 담요를 두르고 차로 이동한 곳은 근처 호수공원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주차장 앞 강물에 비친 빛이 반짝였는데 이를 본 엄마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같이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호수를 둘러싼 길을 셋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강물과 다리를 절며 걷는 엄마를 번갈아 보면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엄마는 "으으으음"하는 소리와 함께 걸음을 멈췄다. 산책을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엄마의 얼굴에는 처음 보였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었고 고통에 찡그리는 얼굴만이 남아있었다.


[2018년 봄]

요양보호사 두 분이 나를 요양원 구석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 풍경은 병상 세 개와 그 위에 누워있는 사람 셋, 그중 한 사람이 엄마였다. 언어, 인지, 운동 등 모든 영역에서 퇴화를 거듭하던 엄마는 어느덧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환자가 되어있었다. 방문 전 요양보호사의 설명을 통해 엄마의 상태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백발노인 사이에 껴서 하늘만 쳐다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대 옆 간이의자에 앉아 세상에 대한 원망에 휩싸인 체로 엄마의 두 눈을 응시하는데 눈치 없는 신참 요양보호사가 "엄마라고 불러보세요. 엄마를 자꾸 불러야 증상이 좋아지죠."라는 소리를 건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봤다. 뭐라고 한마디 쏟아내면서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오만 감정에 휘둘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뒤따라 들어온 다른 직원은 나의 심경 변화를 눈치챈 듯 신참 직원을 방 밖으로 몰아내며 "그럼, 어머니와 시간 보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방문을 닫아주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주변을 돌아보니 방안의 다른 환자들은 족히 여든은 넘어 보였다. 물리적인 나이로 30살은 어린 엄마가 저들과 같은 방에 같은 상태로 누워있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문드러진 내 마음과 별개로 엄마는 나를 보며 속없이 미소를 보였다. 본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속을 알 수는 없었으나 한 가지 사실은 확실했다. 가족의 손을 떠나 요양원에 입소한 후 엄마의 생체시계는 빨리감기 버튼이라도 누른 듯 그 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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