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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10. 2023

EP 17. 일당 13만 원짜리 오디션

[2019년 가을]

와상환자가 된 엄마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합병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가래를 삼키지 못하고 기도에 쌓여 생긴 호흡곤란, 거품을 물며 기절하는 간질, 몸이 떨리고 경직되는 파킨슨 등 그 종류는 끝이 없었다.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고 그때마다 남은 가족들은 번갈아가며 엄마와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병원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 크게 해 줄 수 있는 처지는 없었다. 간혹 입원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또한 경과를 지켜보면서 증상의 악화 여부를 확인하는 용도였을 뿐 치료의 개념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가족들도 치료를 기대하기보단 엄마의 고통을 최대한 덜어주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는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저녁, 아빠의 다급한 전화에 지방의 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병상에 잠들어 있는 엄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옆에 앉아있던 아빠는 마음이 급했는지 나를 보자마자 병실 밖으로 불러냈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엄마는 위독한 상태였다. 콧줄을 삽입한 이후로 엄마의 식사와 약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코를 통해 식도로 이어지는 튜브를 타고 주입됐다. 이런 과정이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궤양이 생겼고, 이게 악화돼서 위에 구멍이 나기 직전이란 설명이었다. 몸 안의 장기가 다 고장 나서 피가 철철 흐르는 상황에서도 엄마는 "아파."라는 말 한마디를 못해 위독한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속상함에 창 밖만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복도 끝에서 다가온 간호사가 누가 보호자로 남아있을 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감상에 빠질 틈도 없이 현실을 직시할 시간이 온 것이었다. 병원은 의식이 없거나 의사표현을 못하는 환자의 경우 1명의 간병인을 요구했다. 엄마의 입원이 발생할 때마다 대개 첫날은 연차 사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내가 간병인을 자처했고, 다음 날부터는 용역업체를 통해 간병인을 섭외하곤 했다. 문제는 그날은 나 또한 회사일로 인해 다음 날 오후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서울까지 운전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늦어도 오전 11시에는 병원을 나서야 하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간병인을 빠른 시간 내에 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다음 날 아침 8시부터 전화를 붙잡고 간병인력 소개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몇 개 업체에 전화를 돌린 끝에 같은 병원에서 오전 10시까지 다른 환자를 간병하고 있는 분이 있어 스케줄을 확인해 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간병복을 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엄마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왔다. 인사를 건넨 후 내 사정에 대한 설명을 했더니 대뜸 "환자분이 어디가 아파요?"를 시작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간병을 하기 전 의례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질문이 너무 길어지자 의아함을 이기지 못하고 "원래 이렇게 확인할 게 많나요?"라는 질문을 역으로 던졌다. 간병인의 대답은 "저희도 환자 상태 보고 결정해요."였다. 그렇다. 엄마는 간병을 당하기 위한 면접 혹은 오디션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황당함에 다음 몇 마디를 퉁명스럽게 던졌으나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 정해져 있는 나는 을이었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으나 이내 말투를 바꾸고 간병인을 달래면서 부탁한다는 말을 연신 해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녀는 일을 맡겠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엄마는 간병인이 주최한 일당 13만 원을 지불하는 오디션을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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