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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16. 2023

EP 19. 선봉장

[2021년 겨울]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후로 요양원의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길어진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3개월에 한 번씩 엄마의 약을 타서 요양원 문 앞에 두고 가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엄마를 다시 마주한 곳은 대학병원의 병실이었다. 요양원에서 의식을 잃은 엄마는 이번엔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질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위기를 넘겨 일반실로 왔지만 회진을 도는 의사에게 들은 얘기는 지겹게도 삽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초로 삽관을 권유받은 후로 이에 대한 정보를 계속해서 수집했다. 환자가 겪을 고통, 연명치료, 입원 및 치료비 등 의사결정에 필요한 사항을 계속 확인해 나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그렇게 알아만 보던 시기를 지나 이제 진짜 삽관여부를 결정해야하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형과 아빠와의 논의는 과거 엄마의 요양원 입소를 결정하던 때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형은 삽관이든 뭐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봐야되지 않냐는 입장이었고, 나는 반대로 의사표현도 못하는 엄마의 생명만 붙잡아두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아빠는 역시 직접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진 않았으나 내 의견에 맘이 기운 모양세였다. 형이 좀처럼 의견을 굽히지 않자 나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목에 관을 삽입하는 순간 요양원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엄마를 옮겨야 했는데 이는 더 이상 국가 지원이 아닌 자비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애둘을 키우고 있는 형이나 이제 막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그 금액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기존에 콧줄 삽입 이후 그랬듯이 엄마의 목에 관을 넣는 건 해결책임과 동시에 또 다른 문제의 시작임을, 그리고 이는 다시 새로운 10년이 시작된다는 의미임을 형에게 설명했다. 사실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형을 설득하는 나였지만 속은 말이 아니었다. 엄마의 요양원 입소가 엄마의 거주 공간과 케어의 문제였다면 삽관은 엄마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였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의 죽음을 아들인 내가 선택하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복잡한 생각에 빠질 겨를이 없었다. 10년 가까이 엄마를 등에 엎고 현실이라는 적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나에게 감상과 상념은 그저 사치품이었다.


긴 논쟁 끝에 우리 가족은 삽관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엄마가 앞으로 얼마나 버텨줄지, 그리고 엄마의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도 우리가 같은 선택을 계속해서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으나 일단 이 날은 잠정적인 결론에 따라 별도 시술 없이 엄마를 퇴원시켰다. 결국 나는 엄마의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 앞에서 또 다시 현실을 선택했고, 심지어 다른 가족들을 설득하며 냉철한 선봉장 행세를 했다. 그날 저녁,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랜 시간 첨전해있던 죄책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생각을 하지 말자. 생각을 하지 말자." 혼자 중얼거리며 태연한 척 운전을 하고 있던 나는 냉철한 선봉장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길을 잃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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