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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22. 2023

EP 20. 마지막 하룻밤

[2022년 여름]

삽관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반년이 넘도록 힘겹게 버티던 엄마는 또 다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입원과 동시에 서둘러 간병인을 찾았으나 갑작스레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도 연차 사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내가 지방으로 향했고 병실에서 엄마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상황이 어찌 됐든 간병인로서 엄마 곁에 있었던 만큼 간호데스크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성실하게 따랐다. 기저귀 교체와 소변량 확인이 그중 하나였는데 엄마의 기저귀를 갈다 보니 갑자기 몇 년 전 엄마의 하체를 씻기려다 안경이 부러지고 살이 뜯겼던 일이 떠올랐다. 불과 몇 년 만에 엄마는 본인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인지는 물론 이를 제지할 힘도 없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할 일을 마무리하고 병실로 돌아와 엄마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시선을 천천히 옮겨봤다. 풍성했던 머리는 다 빠졌고 그나마도 요양원에서의 관리를 이유로 짧게 잘려있었다. 마스크에 가린 얼굴은 살점을 찾아볼 수 없었던 반면 퉁퉁 부어버린 손가락과 발가락은 아무리 주물러도 부종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지는 뻣뻣하게 굳어있었는데 오른손은 복부 앞에 들고 왼 무릎은 굽힌 채로 누워있었다. 지난 10년간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치매와 싸웠으나 엄마가 누워있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니 난 완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중얼거려 봤으나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슬픔에 휩싸여 울음이라도 쏟아내고 싶었으나 긴 시간 감정을 외면해 온 탓인지 눈물을 흘리는 법조차 잃어버려 감정을 해소할 수조차 없었다.  


감상에 빠진 것도 잠시일 뿐 간호사의 계속된 방문과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는 상념에 빠질 여유를 주지 않았고 잠을 잔 건지 밤을 지새운 건지 알 수 없이 몽롱한 상태로 하룻밤이 빠르게 흘러가게 만들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간병인을 찾기 위한 일당 13만 원짜리 오디션을 다시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와병환자였고 다른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병 대상이 되기 위한 오디션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간병인이 도착하자마자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이 반복한 엄마에 대한 브리핑을 능숙하게 마쳤고 바로 병원을 나서 서울로 향했다. 이처럼 특별할 거 없이 흘려보낸 하룻밤은 나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주중 어느 날이자 엄마와 함께 보낸 마지막 하룻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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