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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28. 2023

EP. 22 10년간의 헤어짐

[2022년 여름]

벨소리와 함께 형의 이름이 핸드폰에 보이자 아내는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울먹거리는 형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코만 훌쩍거렸다. 아무 말이 없어도 형이 왜 전화했는지,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나와 아내는 다 알고 있었다. 결혼식 한 달 전, 엄마의 연명치료중단동의서에 서명을 한 이후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엄마의 상태에 대한 아빠와 형의 전화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신혼여행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은 나름 상황을 공유하고자 전화를 했겠지만 달달한 신혼여행을 즐겨할 우리에게 엄마의 상황을 알리는 전화 세례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10년 가까이 유사한 일을 겪어온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혼의 단 꿈에 행복해야 할 아내마저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걱정, 놀람,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이니 언제부턴가 나 또한 벨소리공포감을 느꼈다. 참다 참다 여행 말미에는 전화는 엄마가 돌아가신 게 아니면 하지 말고 일반적인 상태는 카톡으로 공유해 줄 것을 당부할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엄마는 의료진의 예상보다 한 달 반을 넘게 버텼고 그 덕에 결혼식뿐만 아니라 이어진 신혼여행까지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줄타기 같이 아슬아슬한 일상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엄마가 아닌 아내의 외할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상태가 시간별로 달라져서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건 상상할 수 없었으나 눈물범벅인 아내를 보니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앞뒤 따지지 않고 아내의 외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라도 끝자락으로 차를 몰아갔다. 수시로 눈물을 쏟아냈던 아내를 달래 가며 3일간의 장례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군산 언저리에서 받은 전화가 바로 말없이 코만 훌쩍거리는 형의 전화였다.


"야, 엄마 돌아가셨어..." 예상대로 형의 전화는 엄마의 끝을 알렸다. 10여 년 동안 지켜왔던 엄마라는 성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쥐어짜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와 함께 자세를 고쳐 앉았던 아내도 형의 말에 외마디 신음을 뱉은 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엄마와의 이별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는 것조차 우리에겐 사치였다. 장례식은 어디서 어떻게 할지, 나와 아내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등 또 다시 현실이란 이름을 가진 잔인한 놈이 우리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슬픈 일에도 맘 편히 슬플 수 없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으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을 뿐 나는 또다시 냉정을 찾고 장례식장을 향해 핸들을 조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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