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이아빠 Aug 22. 2023

EP 21. 황당한 질문

[2022년 여름]

"안녕하세요. OO병원 중환자실입니다." 수화기 너머 간호사의 목소리에서 가벼운 떨림이 느껴졌다. 불과 며칠 전 평소처럼 엄마를 간병인에게 인계하고 서울로 돌아왔건만 새벽부터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엄마가 중환자실로 다시 옮겨졌고 그 상태가 위독하다는 설명이었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몽롱한 상태였기에 처음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어진 그녀의 말은 잠을 싹 달아나게 만들었다. "어머님은 상태가 너무 위중해서 빨리 오셔서 면회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원래 코로나 유행 이후로 중환자실은 면회가 안되는데 상황이 좀 급하니 서둘러주세요."라는 다음 설명은 분명 내가 아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떨결에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으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단어를 하나하나 곱씹어야 했다. 그렇게 몇 분간 통화내용을 상기하고 나서야 엄마의 죽음이 목전에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한 달 남은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면 결혼식은 미뤄야 하는지, 신혼여행 예약과 위약금은 어떤지 등 현실적인 대응책을 고민하느라 바빠야 했지만 이날만큼은 현실적인 생각보단 엄마에 대한 생각에 빠진 체 운전대를 잡고 지방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엄마의 생이 마감되는 건지, 지금이라도 목에 관을 삽입해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 건지, 의사들의 의학적인 소견을 어떨지를 상상하다 보니 병원까지 걸리는 2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하자마 중환자실로 향했고 10분여의 대기 끝에 각 종 장치를 달고 힘겹게 호흡하고 있는 엄마 앞에 설 수 있었다. 며칠 전만해도 자가호흡을 하며 눈을 마주하던 엄마였으나 한 주도 안되는 사이에 중환자실에서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을 보니 허무함과 동시에 인생에 대한 회한이 밀려왔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별 상상을 다 해봤으나 어떤 말과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무기력하게 약 5분 정도 엄마의 손을 잡고 서있는 것으로 귀한 면회시간을 모두 보냈다.


병실 밖을 나오니 나를 맞이해 줬던 중환자실 간호사가 담당 의사와 만나 연명치료중단동의서에 서명을 하라는 안내를 해줬다.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는데 그러한 배려가 힘겨운 상황에서 큰 위로가 됐다. 곧이어 등장한 담당의사 또한 상황을 설명하는 내내 속상함과 안타까움을 온몸으로 표현해 마치 그의 모친이 아픈 건 아닐까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의료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 것도 잠시 눈앞에 연명치료중단동의서가 등장하자 모든 감상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이 서류에 서명하게 되면 그동안 내가 엄마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종지부를 찍을 거라 생각하니 쉽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뭇거림을 감지한 담당의사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저도 일반적인 상황이면 끝까지 치료해 보자고 보호자 분들을 설득하는데요. 어머님 케이스는 의학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저도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라며 나의 결정을 간접적으로 나마 지지해 주는 말을 건넨 그는 이어서 "관을 삽입하면 당장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삽관은 또 다른 10년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셔야 돼요."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 다른 10년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엄마를 또다시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지속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히자 손에 들고 있던 펜은 어느새 내 이름 석자를 서류에 남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이 없냐는 그에게 나는 다소 황당한 질문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한 달 뒤에 결혼식을 치를 예정인데 그때까지 엄마가 버틸 수 있을까요?"

이전 21화 EP 20. 마지막 하룻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