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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15. 2023

EP 18. 혼잣말

[2019년 겨울]

엄마는 몇 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요양원 생활을 이어나갔다. 물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증상은 계속 악화됐고 새로운 증상은 끊임없이 발현됐다. 그중 하나가 연하곤란, 삼키지 못하는 증상이었다. 입을 벌리지 않는 것으로 시작된 엄마의 퇴행은 숟가락 물기, 음식 머금기 등의 단계를 거쳐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수준까지 다 달았다. 엄마는 결국 영양공급을 위해 콧줄이라 불리는 튜브를 삽입했다. 튜브는 엄마의 코를 지나 식도로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하루 세 번 막걸리처럼 뽀얀 유동식이 주입되었다. 물론 식사는 요양원의 스케줄에 맞춰 코를 통해 일방적으로 주입할 뿐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엄마의 인생에서 음식을 씹고 음미하는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


사실 콧줄은 해결책이자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었다. 튜브를 통해 식사와 영양공급 문제를 대체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삼키는 행위를 할 수 없던 엄마는 기도에 가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증상 초기에는 액상 형태의 진해거담제와 석션기계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나 이는 임시방편이었을 뿐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호흡소리는 거칠어져 갔다. 요양원에서는 언젠가부터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슈라는 것을 인식했는지 병원에 환자와 함께 내원하여 진료를 받아보길 권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내원할 때마다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답을 계속 들어왔던 나로선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으나 그래도 작은 희망을 가지고 엄마와 병원으로 향했다.


항상 누워만 있는 엄마는 이제 휠체어에 앉아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휠체어 차량에서 내린 엄마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휠체어에서 스르르 흘러내렸다. 힘으로 엄마의 자세를 고쳐 잡고 애기를 업을 때 사용하는 천포대기로 엄마의 몸을 휠체어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후 머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계속 젖히는 엄마의 목을 베개로 받친 후에야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었다. 방문한 종합병원은 시골에선 꽤나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는데 주말엔 항상 환자들로 가득했다. 그날도 역시 대기환자가 많았고 한 시간 정도 로비에서 기다려야 했다. 의자에 앉아있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엄마와 주위를 번갈아가며 돌아봤다. 요양원에서 곧장 나온 엄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캐릭터 수면바지와 색이 바랜 플리스 상의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핑크색 천포대기를 온몸에 감고 버리 뒤엔 베개를 받치고 있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수 년째 비슷한 상황을 겪어온 나이기에 타인의 시선과 관심은 더 이상 상처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그 대상이 내 엄마라는 사실이 슬플 뿐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진료실에서 마주한 의사는 다소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엄마의 증상에 대한 내 설명이 채 끝나기 전 말을 자른 그는 '목에 삽관하는 것 말곤 답이 없어요."라는 말과 함께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페이닥터들의 아니꼬운 태도는 종종 겪어왔고 어차피 내가 필요한 건 의학적 소견이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귀찮아하는 그를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은 끝에 목에 관을 넣어 직접 가래를 빼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삽관 이후 복잡한 관리방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아직은 호흡곤란의 정도가 석션과 약으로 대처하며 버틸 수는 있는 수준이었기에 삽관에 대한 결정을 조금은 미룰 수는 있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을 나와 요양원으로 돌아온 나는 요양보호사에게 주기적인 석션 요청과 더불어 새로운 약의 투약방법을 전달했다. 그녀는 이러한 보호자의 특별주문이 익숙하단 듯 알겠다는 답을 한 후 말 끝을 흐리며 혼잣말을 했다. "석션이 문제가 아닌데..."라는 그녀의 혼잣말은 삽관 밖에 해결방법이 없다던 의사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엄마와의 이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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