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몇 번은 아니 그 보다 더 많이 아이를 향한 것인지 스스로를 향한 것인지 모를 치솟는 분노로 뜨거워진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적이 있을 것이다. 삶의 경험이 풍부한 부모와 모든 것이 미지의 세계인 자녀 사이에 동등한 대화는 가능하지 않다.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서로가 듣지 않는 말만 앞세운다. 상대방이 수용해 주길 강요하는 일방적인 대화만 오갈 수밖에 없다. 눈높이를 맞추어 대화를 해야 한다.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직은 조금 더 모르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달라질 수 있다. 모든 부모가 아이와의 대화가 서툰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자신의 아이는 특별한 존재다. 아이가 가진 재능이나 심성을 떠나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부모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 특별하고 각별한 관계 때문에 아이는 피폐해지기 쉽다. 그냥 평범한 아이로 자란다면 얻을 수 있을 유익한 것들을 잃는다.
어린 시절을 건너뛰고 바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너무 조급하고 이기적인 부모의 독선은 버려야 한다. 인생은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거나 쟁취하기 위해 살아 가는 건 아니다. 삶을 즐기고 나름의 행복을 맛보며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이다. 아이의 인생에서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삶의 주인임을 잊으면 안 된다.
“부모가 아이를 향해 분노를 표현하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 삶의 그림자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히기 때문이다.”
자녀를 통해 부모를 실현해 나가는 것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실체는 없어지고 부모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강제로 투사된 이질적인 삶이 충돌하지 않을 리 없다. 매일매일 사사건건 충돌하는 부모와 자녀 관계가 된다. 부모는 자신을 투영하면서까지 아이를 통제할 권한이 없다. 부모의 과거 삶이 자녀의 현재와 미래의 삶까지 강제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분노를 거두면 참된 자녀의 모습이 보인다. 나와 닮아 있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 보인다. 나와는 다른 인격체로써 다르게 존중해야 한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분노를 멈추면 자연스럽게 되찾아지는 삶이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