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 누군가의 기쁨이 주는 행복

by 라이프스타일러

지루하게 이어지던 오전 작업이 끝났다. 진열 작업은 시간이 더디게 간다. 행동은 빈번한데 행동반경이 작다. 이러한 자잘한 움직임은 운동이 되지 않는다. 직원식당에서 진구가 식판을 들고 와 앞에 앉는다. 혼자 편하게 먹는 양해의 문화가 깨졌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여행을 갔단다. 자랑인지 푸념인지 감정이 복잡하다.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여행 보내줄 수 있지 않냐며 위로했다. 진구의 얼굴이 밝아졌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해외를 두 번 갔다 왔다고 했다. 일본으로 수학여행 가느라고 한번, 베트남에서 결혼하느라고 한번. 밥을 씹다가 멈췄다. 다문화가정지원센터와 함께 결혼 이주 여성을 위해 자원봉사 했을 때가 생각났다. 외국에서 오는 여성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안다. 살아 오던 모국을 떠나 이국의 낯선 땅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자녀들 역시 한국에서의 사회화 과정이 순탄치 않다. 그들에게는 한국인이었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유리 벽이 존재한다. 진구의 입에서 본심이 나왔다. 일본여행을 함께 가고 싶었단다.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포기했다는 말이 한 숨 섞여 나왔다. 가족을 보내고 아빠만 홀로 남았다. 밥을 먹어야 오후 일을 견디는데 밥 먹는 일이 불편해졌다.


아이가 고등학생과 중학생이라고 했다. 삶의 무게 때문일까 힘없이 쳐져 걷는 진구의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다. 늘어진 어깨가 언젠가 활짝 펴졌으면 좋겠다. 벌어 놓은 게 없는 사람은 몸이 재산이다. 아내를 위해 아이를 위해 노후의 자신을 위해 몸을 잘 돌봐야 한다. 일용직도 체력에 부칠 때가 온다. 살아 가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길 바라지만 살아 온 경험으로 보면 가능하지 않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돈을 계속 번다는 것이 쉽지 않다. 주어진 환경을 헤쳐 나가려면 힘이 필요하다. 힘은 근육에서 나온다. 근육을 길러야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진구는 일하는 열정에 비해 체격이 왜소하다. 쓰는 근육만 쓴다. 노동이 운동으로 바뀌지 않는다. 흡연 하러 갈 때 외에는 한 번도 쉬지 않는다. 꾀도 부리지 않는다. 목적하는 바가 없다면 그렇게 일할 이유가 없다. 작업하는 거리가 가까워 졌을 때 물었다. 마음 속에 관리자로 채용될 희망을 품고 있다. 1년을 채우고 난 후 관리자 모집 때 신청할 계획이다. 쿠팡에서 공식적으로 60세까지 일할 수 있다. 그에겐 아직 10년이나 남았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쉬지 않고 일하던 모습이 이해됐다. 무엇이 되었던 꿈꾸는 자가 이룬다. 그의 꿈을 응원한다. 꿈이 있는 자의 일하는 자세는 아름답다.


잔잔한 바닷가에 은빛 물결이 반짝인다. 모래사장 없는 해변가에 회색 건물만 늘어서 있다. 정겨움이 없으니 적막이 흐른다. 부두에 바짝 붙어 있는 화물선에서 하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줄지어 서 있는 창고와 공장에서 감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회색 건물을 따라 회색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다.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색이 싫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작업장으로 가는데 옆으로 다가 온 소연이가 혼자 말인 듯 건네는 말인 듯 이야기했다. 이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밖에 못 나올 거라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미술 원장도 긴긴 방학엔 어쩔 도리가 없었나 보다. 신학기를 맞아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떠있다. 물류창고는 실내임에도 겨울 내내 온도는 영하였다. 너무 크게 지어진 건물은 냉난방을 할 수 없나 보다. 어쩌면 물류창고라서 냉난방을 생략했는지 모른다. 물류창고의 주인은 상품이니까. 상품은 추위나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이 문제였다.


물류창고는 여름의 더위를 막아 주지 못했듯이 겨울의 추위 역시 막아 주지 못했다. 손끝이 시리고 떨려 몸을 가누지 못했던 기억이 아프다. 소연은 본 업으로 복귀가 간절했을 것이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 수업이 머리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을 준다. 누군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의 기쁨에 진심으로 미소 짓게 될 줄 몰랐다. 좋으면 그 순간이 행복이다. 행복을 느끼는 일이 어렵지만은 않다.


물류창고를 찾은 사람 중에는 본래의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 겉만 봐서는 모른다. 어떤 결심으로 왔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곳에서 가장 좋은 동료는 자주 볼 수 없는 동료다. 자신의 길로 조금씩 더 다가 서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연이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오겠다고 했지만 나오지 않는 때가 더 많아 지더니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동료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가장 소망하는 일이다.


쉬고 나오니 온 몸이 뻐근하다. 두 시간 정도는 지나야 몸이 풀린다. 시차에 적응하 듯 노동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구가 겉 옷을 벗는데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빨간 조끼가 모습을 드러냈다. 옷 색깔이 언제 변했냐고 묻자 화요일이라고 수줍게 말한다. 계약직 사원이 됐다. 일용직에서 한 발 더 나간 셈이다. 정말 기뻤다. 칭찬이 어색한지 자꾸 피한다. 본인 의지만 있다면 몇 년은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 급여도 오르고 공휴일도 생기고 수당도 받는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걸 해줄 수 있다. 제대로 된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아내도 기뻐할 거다. 계약직부터는 법의 보호를 받는다. 머지않아 주황색으로 색깔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성실한 진구에게 10년의 행복이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때는 아이도 성인이 되어 있을 거고 양육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신을 위한 시간도 주어질 것이다. 어쩌면 행복은 그런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구가 지각 하거나 결근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분명 출근 명단에 있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진구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람이 변하면 안된다. 계약직이 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실망스런 배신감이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협력업체 사원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정규사원으로 특별 채용한 적이 있다. 사원이 된 그 사람은 더 이상 열심히 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보상과 행복을 만끽하느라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사람은 속을 알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란 말은 자주 증명된다. 1시간쯤 후에 진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이 없다. 분류 조장인데 분류로 오지 못하고 진열을 하러 간다. 계속 혼자 일해야 하나,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졌다. 진구가 가까이 다가 왔을 때 물을 수 있었다. 아내가 감기에 걸렸다. 보일러를 틀어 놓고 자다 보니 늦잠을 잤다고 했다. 아내를 보살피는 사랑꾼의 마음이 애틋한 건지 피로에 퍼져 버린 육체가 짠한 건지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