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마음학특강 고구마
육중한 땅을 이고도 짓눌림 없이 당당히 지내왔습니다.
밀쳐낸 흙의 크기만큼 몸은 커져 갔고
지상을 향한 열정만큼이나
내 몸은 점점 더 강인해져 갔습니다.
거친 태양의 숨소리에 온몸이 달구어져도
작은 벌레가 한없이 잎줄기를 갉아 먹어도
이슬의 축축함으로 습기가 엄습해 와도
평정심을 유지한 채 온전히 나를 지켜 냈습니다.
캄캄한 땅속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았고
꺼내 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잎을 통해 세상과 함께 호흡하였고
줄기를 통해 세상과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그것을 통해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 끝에 밖으로 나갈 것을 준비했고
오늘은 내가 나오기에 가장 좋은 날입니다.
고구마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하얗게 눈 내리는 겨울날이다. 잘 구워진 고구마의 껍질을 살짝 벗기면 탐스럽게 익은 노란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호호 불며 먹기도 하고 입술을 데기도 한다. 고구마는 누군가 함께 할 때 먹는다. 따뜻한 고구마에서 함께 하는 인간미가 나온 듯하다.
고구마를 열 개는 먹은 것 같다고 말할 때가 있다. 답답한 사람이나 상황을 일컫는다. 고구마를 먹다 보면 목이 메일 때가 있는데 그런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고구마는 근육질의 단단함도 상징한다. 듬직하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고구마의 삶은 험난하다. 우여곡절도 많다. 본래는 채소지만 감자와 함께 양곡으로 분류된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지면 양곡 대신 식량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흉년에는 귀한 대접을 받았으나 풍년이 들면 굳이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근래에는 음식의 종류가 폭발적으로 늘고 맛도 좋아져서 존재감조차 사라졌다.
고구마는 법적으로는 양곡이나 실생활에서는 늘 채소로 이용돼 왔다. 양곡류는 유통기간이 길다. 장기간 보관과 이용이 가능하다. 그에 반해 고구마는 불과 며칠 사이에 품질이 저하되거나 썩거나 싹이 난다. 대부분의 양곡류는 종자 상태로 있기 때문에 보존 기간이 길다. 고구마는 과실 상태로 있기 때문에 보존 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다.
10년 전쯤 일이다. 포장 판매되던 고구마에 양곡 표시를 하도록 강제한 적이 있다.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양곡표시제를 정착시키려는 목적에서였다. 양곡관리법을 적용함에 따라 고구마 판매에 있어 표시사항 위반이 지적됐다. 고구마는 전 매장에서 일시에 퇴출됐다. 양곡관리법에 따른 표시를 하고 나서야 다시 진열이 됐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고구마가 법적으로 양곡이라 해도 양곡매장에서 판매할 수 없다. 양곡과는 성질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나 이틀이면 새로운 상품으로 바뀌어 진열되는 고구마를 양곡매장에서 관리하기 어렵다. 상품운영 주체도 문제가 됐다, 고구마의 담당이 채소 바이어인지 양곡 바이어인지가 모호하게 됐다.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면 작목, 수확, 보관, 포장, 유통 과정에 대한 관리가 따라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법의 적용은 법의 실익이 있어야 한다. 현실의 실태를 감안 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법적 문구에만 충실하다 보니 고구마의 매출이 현저하게 추락했고 상당기간 회복되지 못했다.
구황작물로 외면받던 고구마가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세척을 하고 부터다. 이전에는 흙이 묻어 있는 그대로 유통됐다. 채소류는 물이 닿거나 물로 씻으면 안된다는 선입견 때문에 수확한 상태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그런 고구마를 큐어링했다.
큐어링은 고구마 수확 후 일정 온도와 습도에 보관하는 것이다. 상처난 것이 아물고 보호막도 생기고 색도 짙어진다. 큐어링 된 고구마를 세척하고 건조해서 포장한다.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함께 묻어 오는 흙이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었다. 고구마의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두 번째 전성기는 고구마를 말렸을 때 일어났다. 반건조 곶감처럼 반건조된 고구마는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는 쫄깃함으로 인기를 끌었다. 풍부한 섬유질로 인해 장운동을 활발히 해준다고 해서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그럼에도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반건 고구마의 품질이 제각각이었다. 가격도 합리적으로 내려와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상품이 대중화되려면 가격이 하향 조정되어야 한다. 높은 가격은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 특히 반복해서 구매하고 소비되어 사라지는 식품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고구마는 물고구마라고 하는 일반고구마가 있고 밤 같은 맛과 식감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밤고구마가 있고 부드러우면서 단맛이 강한 호박고구마가 있다. 고구마는 영양번식하는 식물이다. 영양번식이란 고구마 몸에서 싹을 틔워 재배하는 방식을 말한다. 고구마 몸에서 발생한 고구마 순을 잘라내 심으면 독립된 개체로 고구마가 달리게 된다. 이것은 전체형성능 때문에 가능하다. 대부분의 식물은 전체형성능을 가지고 있다. 고구마의 일부를 잘라 내 심었는데도 하나의 완전한 고구마로 자란다.
씨앗으로 발아되고 성장하는 종자식물의 경우는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확장된다. 영양번식으로 성장하는 식물은 종류가 제한적이다. 영양번식은 모체의 유전자가 현존하는 그대로 후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전자의 보존성이 매우 강하다. 돌연변이가 거의 없다. 품종의 고유한 성질이 유지되기에 알맞다.
주먹만한 크기의 유선형으로 생긴 고구마가 소비자의 이용에 적합하다. 고구마는 뿌리가 커진 것이기 때문에 크기가 너무 크면 심줄이 많아지고 굵어진다. 맛도 떨어져 상품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게 된다. 식품 가공원료나 맛탕용으로 쓰면 좋다.
고구마의 상품 개발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소비자는 1차 생산물의 경우 본래 그대로 성질이 유지되는 것을 원한다. 자연이 주는 천연의 맛과 영양을 즐긴다. 자연을 느끼며 자연을 섭취하고 싶은 욕망이다. 상품성이 좋아지려면 육묘나 육종을 통한 품종의 개량과 고품질화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원료가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가공 상품과는 전혀 다르다. 품질의 고르기나 생산량의 확대, 생산기간의 단축 등이 어렵다. 노력은 많이 들어가고 부가가치는 적기 때문에 수익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생산 단가가 낮아지고 수익성이 커진다는 규모의 경제 효과라는 게 있다. 가공 상품에 맞는 말이다. 1차 생산물은 규모의 비경제 효과에 더 빨리 도달하기 때문에 일반 농가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어렵다. 기업농으로 전환할 수 없는 농가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중소규모 농가의 안정된 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농가의 가공 상품이다. 농가의 생활이 안정되면 농업 기반의 안정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이 가능하다. 지역별 농가별 작목별 특성을 살려 소규모의 가공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이다. 세척 고구마 때도 반건 고구마 때도 농가에게 희망을 주었다. 문제는 계속 생산과 트랜드에 따른 상품의 변화이다.
1차 농작물은 일년 중 특정한 시기에 수확을 하고 나면 휴지기로 들어 간다. 농작물이 계속 생산되지 않는 특성은 상품의 가공이나 공급을 중단시킨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틈을 타고 대체 상품이 자리를 차지한다. 년중 생산이나 년중 공급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
1차 농작물은 일년 중 특정한 시기에 공급되기 때문에 “햇”자가 붙는다. 공급이 끊겼다가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공 상품은 신상품이라고 하지 햇상품이라고 하지 않는다.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시기에 먹지 못하면 먹을 수 없는 상품이 되어야 한다. 소비자가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농가의 가공 상품은 가공된 상품이지만 1차 농작물의 특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식품제조회사의 가공 상품과 다른 특성이다. 농가의 가공 상품은 원료의 성질을 유지해야 한다. 가공 행위는 이용의 편리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군고구마, 고구마 샐러드, 고구마 맛탕, 고구마 빵, 고구마 피자, 유탕처리된 고구마 칩 등 모두 고구마의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구마 전분처럼 성질이 변하면 안된다.
날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어 이전에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뀌고 있다. 다행스럽다. 걱정거리도 있다. 오늘의 소비자가 어제의 소비자가 아니다. 세대도 바뀌고 있고 입맛도 바뀌고 있다. 식품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경쟁해야 할 상품의 유형도 늘어났다. 오늘은 살아 남았지만 내일은 사라질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것이 오늘의 상품이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따라 함께 뛰어야 한다.
지금의 소비자는 문화적인 욕망이 강하다. 상품에 문화를 입혀야 한다. 소비자를 세분화하고 각 그룹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문화적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 상품을 만드는 행위는 가공이 아니라 예술이다. 예술가가 되면 고구마의 순 틔는 소리, 땅 속에서 흙을 밀쳐내는 힘겨운 소리, 단단한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1차 생산물의 생명의 느낌 그대로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이 상품의 마음을 읽는 일이며 상품을 개발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