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잠시 머물 줄 알았는데 8개월이 지났다. 날다 지쳐버린 새처럼 내려 앉은 곳이 쿠팡 물류센터다. 목적을 잊고 다시 날아 오르지 못할까 두려웠다. 매일이 새롭길 바랬지만 원하는 대로 되진 않았다. 연못 속 물고기처럼 갇힌 삶은 싫다. 거슬러 가는 삶을 택했다. 멍들고 상처가 나도 물살을 거스르는 바둥거림은 살아 있는 증거다. 놓을 수 없는 희망은 많은 대가를 요구했지만 기꺼이 지불해 왔다.
퇴직 후 시작한 사업이 간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담했다. 계획대로 강사를 겸한 컨설턴트가 되었다. 농촌의 가공상품 개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전국 농업기술센터를 돌아 다니며 노력했지만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순 없으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고통을 자처하는 고행자의 갈망처럼 쿠팡 일용직에 지원했다. 육체적 고통은 강인한 정신을 잉태한다. 숫돌에 갈 듯 자신을 쿠팡에 갈고 싶었다. 강건한 정신과 체력으로 거듭나야 도전을 계속할 수 있다.
중년은 채용이 어렵고 했는데 신청하자 마자 출근이 허락됐다. 휑하니 넓은 공간에 보이는 건 상품과 진열대뿐이다. 사방에 깔려 있는 컨베이어 롤러가 거친 소리를 내며 쉼없이 돌고 있다. 성실한 창수가 부럽다. 젊은 창수의 건장한 체구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운동했을 것이란 믿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체형이 저렇게 단단할 리 없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4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는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가는 모습이 멋있다. 1시간도 안돼 따라 하는 걸 포기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 일이 아니다. 속도를 늦춰 부실한 체력에 맞췄다. 작업이 한결 편해졌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욕심을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겸손하게 기초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 잘난 사람 옆에서 일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용직인데 저렇게 열심히 해도 되나 싶다. 분명 힘든 일인데 아무렇지 않게 일하는 창수 때문에 괜히 무색해졌다. 힘든 일을 통해 심신을 수양하려던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이곳에서 일하는데 나이나 기술이 필요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이다. 물류센터 보다 물류창고가 정확한 표현이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찾게 되는 의미도 달라진다. 어떤 주부는 자녀의 학비를 보충하기 위해 왔다. 어떤 젊은이는 직장이 있음에도 생활비를 보충하려고 왔다. 대학생은 용돈 때문에 누구는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오기도 한다. 각자가 목적한 대로 욕구를 충족하는 곳이다. 개인의 생각으로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된다.
눈으로 쏟아져 들어 오는 땀도, 휘청거리는 허리도, 후들거리는 다리도 버텨내기 어렵다. 힘이 빠져나간 손으로 쥐어 지지 않는 박스를 온 몸으로 끌어 안았다. 사무만 보던 체력으로는 턱도 없다. 강한 정신과 체력이 필요하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포기 하느니 죽어버리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마침내 3일처럼 긴 하루가 끝났다. 나약한 모습은 싫다. 주저 앉지 않았지만 한계점은 명확했다. 이겨내기 보다는 견뎌냈다. 겉으로는 버텼지만 속으로는 무너졌다. 이틀 내내 구석구석 전신이 쑤셔왔지만 마음은 더 쑤시고 아파왔다. 쿠팡을 탓하지 않는다. 물류센터에는 남성 못지 않게 여성이 많다. 관리자도 여성이 많다. 나이 많은 사람도 꽤 있다. 키가 목까지 밖에 오지 않는 여학생도 하는 일이다. 부실해진 체력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된 것 뿐이다. 창피함에 할말을 잃었다.
당분간 쿠팡에서 일하기로 했다. 일용직의 자세도 버렸다. 쿠팡 피지컬 센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체력을 단련하는 거라고 최면을 걸었다. 요령 피우지 않았다. 운동하러 왔으니 땀 흘리면 된다. 한계점에 이르면 넘어서고 한계점에 이르면 넘어서길 반복했다. 매일의 하루가 한계로 다가와 좌절을 안겼다. 오기가 좌절을 딛고 일어 서게 했다. 근육이 붙으며 견뎌내는 힘이 생겼다. 점차로 노동이 운동으로 변해갔다. 작업은 노동이 아니라 운동이 되었다. 하고 있는 일은 동일한데 어떤 때는 노동이 되고 어떤 때는 운동이 되었다. 작업 때마다 하나 하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실험했다. 스트레스는 마음에 병이 되지만 신체에는 자극이 된다. 근육은 스트레스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강해진다는 걸 알았다. 근육에 스트레스를 주는 건 간단하다. 의식을 심어주면 된다. 무의식의 움직임이 아닌 의식의 움직임으로 바꿔주면 운동이 된다.
무의식으로 근육을 사용하게 되면 생존을 위한 일상 생활의 움직임이 된다. 생존을 위한 근육 움직임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세팅 되어 있다. 사용하던 근력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의식이 있는 생각하는 근육을 사용해야 생존을 넘어서는 활동이 된다. 의식 있는 활동은 근력의 성장을 촉진한다. 생각하는 근육의 사용에는 뇌가 작용한다. 뇌는 근육이 힘들어 하면 근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근력을 강화하도록 신체의 기능을 조절한다. 생존 활동은 생각없이 이루어지므로 운동이 되지 않는다. 생각없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경험으로 축적된 무의식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생각 없는 근육과 생각하는 근육은 소모되는 에너지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생각하는 근육은 보유하고 있던 낡은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에너지를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통해 근육이 활력을 얻고 성장해 간다.
체력을 키우려면 근육에 생각을 심어 주고 활동 강도를 높여 줘야 한다. 음악을 들으며 운동하면 리듬을 타기 때문에 즐겁다. 근육이 리듬을 의식하며 움직인다면 운동이 되지만 점차로 음악과 근육은 분리된다. 음악이 뇌의 관심을 독점하면서 생각하는 뇌와 운동하는 근육 사이에 단절을 일으킨다. 뇌가 근육을 잊게 만들면 운동효과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근육의 필요를 뇌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뇌와 멀어지면 무의식이 그 자리를 대신해 운동을 지배한다. 생활의 움직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근육에서 생각이 떠나면 운동이 되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하면 고통이 현저히 감소되는 걸 느낄 수 있다. 고통의 감소는 근력이 강화될 필요를 줄여 준다. 근육이 뇌에 실제의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근육이 느끼는 고통이 커져야 근력이 증가할 필요가 생긴다. 뇌가 판단하고 조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근력은 고통을 품고 성장한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