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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실에 이르는 고단한 길

by 라이프스타일러

폭염 경보가 잇따르던 8월의 늦여름은 기상 관측 이래의 모든 기록을 갈아 치웠다. 쿠팡 물류센터는 오전부터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인해 용광로처럼 달아 올랐다. 머리에서 솟아난 땀이 목선과 쇄골을 타고 몸의 굴곡을 따라 흘렀다. 골반을 돌아 사타구니를 지난 땀줄기는 발꿈치 밑으로 모여 들었다. 양말과 신발 사이에서 밟히는 땀의 질척임이 신경을 타고 다시 뇌로 올라왔다. 물이 차오른 늪을 걷는 느낌이다. 걸을 때마다 발이 바닥으로 빠진다. 내뱉는 숨소리를 따라 물 먹은 스펀지처럼 몸에선 육즙을 밀어낸다.


자율신경계는 체온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차라리 잘됐다. 좋게 생각하자. 살도 빼고 근육도 키울 수 있는 기회다. 일은 힘에 부치고 먹는 건 부실하다. 몸 만들기에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지금이 기회다. 악마의 유혹처럼 천사의 격려처럼 귀가 간질거렸다. 나쁜 일이 나쁜 결과만 가져 오는 건 아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기회를 잡으려면 기꺼이 위기 속에 있어야 한다.


몸이 이겨내지 못할 만큼 힘껏 일했다. 여기저기 쓸모없이 비축되어 있던 에너지가 빠르게 소진됐다. 당이 떨어지고 현기증이 났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뇌를 달랬다. 뇌가 설득되면 체내의 호르몬도 신경 체계도 뇌의 지시에 따라 인식하고 반응한다. 5분정도 지나자 정말 괜찮아졌다. 의식의 의지가 무의식의 자율신경계를 이끌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 어떤 능력을 보일지 알 수 없다. 어제까지 없던 능력을 발휘하는 자신에게 놀랄 때가 많다.


의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의지를 단련하는데 육체적 고통만큼 좋은 것은 없다. 고통은 의지에 의해 유지되며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고통은 회피 대상이 되면 안된다. 진실을 찾아 가는 길에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맹자도 “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먼저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곤궁하게 하며 일이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고 했다. 고통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능력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고통은 의식수준을 높은 단계로 인도한다. 의식이 높아지면 각성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의식의 에너지 수준이 높아질수록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 인류의 행복과 공동의 선에 영향을 미친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선한 영향력이다. 선한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선행이 늘어난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의식혁명에서 인류의 약 85%가 임계 수준인 200이하의 에너지 수준이라 했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의식의 에너지 수준은 499다. 의식의 에너지 수준이 낮을 수록 슬픔, 두려움, 욕망, 분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식의 에너지 수준이 높을 수록 사랑, 기쁨, 평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너지 수준 1000 이상에 주 크리슈나, 주 붓다, 주 예수그리스도가 있다. 1인의 성자가 8억4천만명에게 영향을 준다고 한다. 세계 인구가 81억명이다. 이들을 사랑과 평화, 깨달음으로 인도하려면 10명의 성자가 필요하다.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누구나 작은 성자가 될 수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은 나로 인해 행복해야 할 사람이다. 배려해야 한다. 이제부터 작은 성자로 살아 보자.


쿠팡은 어디서 무엇을 하던 힘들다. 단순 작업이 무한 반복되면 고강도의 노동으로 진화한다는 걸 알았다. 고강도의 노동이 되고 나면 아무나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 된다. 고강도의 노동은 고강도의 고통을 수반한다. 일용직은 매일의 하루가 새로운 1일이다. 단절된 하루가 쌓일 뿐이다. 무슨 일이던 할 수 있고 서툴러도 비난 받지 않는다.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 필요하면 쓰이고 필요 없으면 쓰이지 않아 노동의 유연성도 높다. 일용직이라 대충하면 되지만 한국사람은 그게 안된다. 타고난 근면 성실의 DNA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충 하지도 않지만 대충하다가도 몰입한다. 특이한 현상이다. 나이가 많던 적던 같은 모습을 보인다.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치껏 알아서 쉬는데 한꺼번에 몰리지 않는다. 몸에 센서를 달아 놓은 것도 아닌데 조화롭다. 휴식은 몸을 추스르고 일에 리듬을 준다. 체력 보충도 되고 작업 효율도 좋아진다.


체력 소모가 심한 상품 분류작업을 지원했다. 지원 이유는 운동하고 싶다는 거다. 육십갑자 나이를 알고 있던 담당자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같이 웃었다. 그건 사실이니까. 덕분에 원하는 업무에 주로 배정됐다. 몸에 존재하는 모든 지방을 분해하고 싶었다. 얄팍한 다리 근육과 파르르 떨리는 팔을 독려했다. 노동은 예상대로 지방을 분해해 갔지만 근육도 함께 소모 시켰다. 재섭은 겉모습만 보면 몇 살은 더 위로 보인다. 노동을 오래한 탓일 거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다. 말 수도 적고 일만 한다. 무리하지 않지만 꾀도 부리지 않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황을 판단해서 알아서 처리한다. 일 머리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작업이 곁에 있는 사람과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한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노련함이 돋보인다.


재섭은 항상 원칙을 고수한다. 팔레트 하나에 한가지 상품만 실려 올 경우에는 구분해서 따로 놓는다. 팔레트 채 진열하기 때문이다. 원 팔레트 원 상품의 경우지만 가끔 그 위에 몇 개의 다른 상품이 얹혀 오는 경우가 있다. 몇 개의 상품만 걷어 내면 되는데 굳이 원칙대로 작업해서 두 번 일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도 원칙대로 일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사람이 바뀌면 원칙도 일하는 방식도 바뀐다. 재섭이 들어 온 날짜가 빠르다. 말 수도 적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기 어렵다. 위계가 없는 일용직이지만 선임에 대한 배려가 몸에 베어 있다. 우리가 퇴근하고 나면 이어서 출근하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흐트러질 것이 뻔하다. 고집 부릴 필요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 놓으면 옳고 그른 것이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작업 효율은 떨어져도 사람 관계는 유지 되야 한다. 일하는 방식을 양보하면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양보하는 마음은 자신을 수양하는 일이다. 나를 내려 놓고 타인을 받아 들이는 일이다.


음료, 세제, 통조림 박스 상품은 정말 무겁다. 반복하면 강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피폐해져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풀리면서 힘이 들어 가지 않는다. 체력이 고갈됐다. 육체가 견뎌낼 임계점을 넘겼다. 열악한 상태에서도 노동을 계속하려는 내면을 들여다 봤다. 도파민이다. 도파민이 분출되려면 근육에 강한 자극이 지속되어야 한다. 도파민은 고통을 쾌감으로 전환시킨다. 성취의 만족감은 늘 땀과 함께 온다. 도파민이 전율하며 온 몸을 두드린다. 늘어졌던 근육이 다시 조여졌다. 내부에 묵혀 있던 것이 격렬한 근육의 움직임에 밀려 난다. 쾌적한 시원함이 인다. 맑은 공기가 채워지며 몸이 가볍게 들떴다. 운동 후에 느끼는 상쾌함과 닮아 있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신선한 에너지가 돌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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