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와 새로운 시작
명예퇴직을 했다. 그토록 바둥대던 직장생활이 비로서 끝났다. 시원함을 후련하게 느끼지 못한다. 여전히 쓸려 나지 않는 찌꺼기가 남아 있다. 비웠다는 건 생각뿐인가 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다. 따라 가기도 빠듯했다. 딱히 잘한 건 없다. 매번 새롭게 시도했다. 도전을 통해 자신을 깨닫는 즐거움이 있었다. 쫓기며 허둥대던 시간 속에 흘리던 진땀이 아직도 묻어 난다.
굳이 편한 길을 놔두고 힘든 노력의 시간을 택했다. 낯선 업무와 공부에 도전하며 겨우 몸뚱이 하나로 버텼다. 긴 밤을 부여 잡고 그토록 이루려던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 쌓여버리는 한 해 한 해의 무게에 짓눌렸다.
순수한 시작도 거칠게 부딪치고 나면 왜곡되고 변형된다. 힘없이 부서져 내리는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존재의 형체조차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어렵게 배웠던 만큼 배울 때의 즐거움이 가르칠 때 다시 솟아 나길 소망한다. 혼자서는 힘든 일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다. 즐기면서 희망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랬다.
나이 들수록 무엇인가 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줄어 든다. 밤 세우며 책을 읽던 지구력은 이제 되살아 나지 않는다. 배움은 이미 형성된 관념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운 방법을 찾게 하고 다르게 시도하도록 길을 열어 준다. 퇴행하는 의사결정을 막아 주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배움은 자기성찰을 통해 불합리한 점을 발견하고 비효율을 제거해 준다. 자신에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자유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 배움은 실천을 위한 것이며 실천은 자유롭기 위한 것이다. 배움의 과정에서 자유를 알아 간다. 배울수록 버거워지고 힘겨워 하는 사람도 있다. 배움의 무게에 눌리면 그렇게 된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뿐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지식으로 인해 판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있다. 배움의 목적은 실천에 있다.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기 위한 목적 지향성을 갖는다. 지식의 무게만큼 자신의 존재도 높아지는 것으로 아는 이들도 있다. 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건 좋지 않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배움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남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배움은 과정 중에서 그 목적이 실현된다. 배움을 획득의 대상으로 이해한다면 결코 배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배움의 정수는 가르침에 있다. 남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성장하고 성숙해져 간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행운이며 축복이다.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배움이다. 현실과 이상을 조화롭게 통합시켜주는 과정이다.”
가르침은 남과 나를 동시에 일깨운다. 동시에 만족을 주며 동시에 행동할 수 있는 유대를 형성한다. 가르침과 배움은 양면의 속성을 가진 메비우스의 띠와 같다. 배움과 가르침이라는 과정 속에서 자유를 얻고 행복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