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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Aug 21. 2023

그 시대의 힙스터, 엄마

1980년대 결혼식 사진 속 엄마



집에서 엄마와 아빠의 옛 사진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옛날의 필름카메라로 찍어 인화해서 몇 십 년이 흘렀는데도 믿을 수 없는 힙hip스러움 때문이다.


세상에. 위의 사진은, 아직 서른 살이 되지도 않은 우리 엄마의 결혼식날. 3만 원인가 주고 빌렸다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결혼식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진짜로, 나라도 우리 엄마를 보고 반하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저 하늘거리는 레이스는 분명 레이온으로 만들었을 거고, 팔뚝마저 희미하게 비쳐 보일 뿐 쇄골 바로 아래까지 꼭 닫힌 디자인인 데다가 저 풍성하지도 않은 드레스 속에서, 우리 엄마가 너무 예쁘잖아...? 소박하지만 길게 늘어진 부케와, 말도 안 되게 우아한 레이스 장갑 좀 보세요.

여러분, 이 사람이 우리 엄마랍니다. 








저 때 사진을 하나 더 공개해야 우리 엄마의 아름다움을 모두 인정하겠지.


이 사진은 무려 저 웨딩 사진을 찍고 그 다음다음 날쯤 되려나? 제주도에 신혼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말도 안 돼. 겨우 세 번 만나고서 결혼 한 사람들이 결혼식 했다고 부둥켜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사진 찍는 힙hip함이라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끔, 도대체 그때 그 시절 어른들은 어떻게 키스도 한 번 안 해 보고 결혼까지 하는 용기를 낼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런 "완벽한 타인"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한다. -아아, 혹은, 역시나 그때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뿐이었을지도. (슬프네.)-


여하튼 각설하여, 보시라. 저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아빠에게 안긴 우리 엄마를. 코코 샤넬이 이 사진을 봤다면 자기가 왜 먼저 저 새빨간 드레스를 만들지 못했는지 아쉬워했을 거다. 왜냐면, 옷걸이가 우리 엄마니까. 유럽인들이 미쳐 날뛰는 아름다운 광대를 돋보이게 하는 메이크업과 커다란 눈 위를 덮은 파마머리. 골반에 딱 걸린 저 클러치 스타일의 핸드백. 아니 도대체 저 뽀글이 파마는 무슨 구르프(?)로 말았기에 저렇게 예쁘게 뽀글거리는 거지...?

더구나 이 모든 스타일링이 셀프라는 게 중요한 부분 되시겠다. 참나. 이런 센스라니... (이마짚)




제주도의 새까맣고 구멍 뚫린 현무암 위에서, 엄마 아빠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이제 막 서로 부부가 되었다는 설렘으로 행복했을까? 익숙한 듯 낯선 사람과 평생 함께 살기로 했다는 것에 자신도 어리둥절했을까? 새롭게 시작될 당신의 서른과 조타실을 나누어 쓰게 된 상대방을 보면서 희망을 꿈꾸었을까? 우리 삼 남매가, 내가, 엄마 아빠의 아들딸로 태어날 것을 상상해 보기나 했을까? 이렇게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적 필연성 때문에, 온갖 미움과 원망이 섞일 수밖에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적 필연으로, 애틋함과 사랑 또한 없을 수 없다.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든, 앞으로는 편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힙hip한 60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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