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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Nov 13. 2024

D-7주, 좋은 가을

in 2024, for 2025

참으로 좋은 가을이다.

이번 가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재미난 일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2024년 마지막 7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해를 시작할 때, 내 인생의 한 챕터를 닫고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거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 가을에 그 일이 분명하게 일어났다. 그러니까 참으로- 마법의 가을*인 셈이다.




첫 번째는 구피천에 다녀온 일이다. 정말 별생각 없이, "구피천에 가면 구피가 많대. 우리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친구와 둘이 다녀왔다. 가져간 물건이 그래서 고작 볼품없는 체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짧은 수족관용 체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더 이상 쓰시지 않는 부엌용 체였다.


저 볼품없는 것들로,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건져 올린 구피 다섯 마리.

아주 작고 소중한, 치어다. 큰 녀석들은 도무지 잡을 수 없었고, 시클리드도 한 마리 봤지만, 그 시클리드는 절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 계곡에서 송사리 잡던 바로 그 느낌. 다 큰 어른들, 심지어, 서른이 넘은 여자 둘이서, 그 뜨뜻미지근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정말이지 초라한 체로 쉴 새 없이 물속을 헤집는 경험이라니...!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이 가을의 첫 번째 좋은 기억이다.

(아직도 구피들은 내 어항에서 잘 자라고 있다. 조만간 자라난 구피를 자랑할 것이다. 처음에 1센티쯤 되던 녀석들이 벌써 2센티 가까이 되었으니까...!)




두 번째는, 광주의 아시아 문화 전당에서 김아영 작가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관람한 일이다.

와....... 진짜 너무너무 좋았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침 일찍 나 혼자 들어가서 그 큰 스크린을 독점하고 보는 작품은... 하... 작품이 2025년 2월 16일까지 전시된다고 하니, 광주에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가서 이것만큼은 보기를 권한다.

도대체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통찰력, 표현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친구와 단 둘이 데이트.

우리에게는 서로를 위로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열심히 살아왔고, 열심히 살고 있는 너와 나를 위해.

가끔 만나서 맛있는 밥과 소란하지 않은 시간을 선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We deserve it.





아침 일찍부터 예쁜이 조카를 보러 간 날.

언니를 병원에도 보냈고, 사고 싶었던 신발도 사고, 사려고 했던 옷도 선물 받았던 날.


언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인데, 어느 정도냐면 나는 언니가 내 또 다른 아바타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언니의 삶의 절반 정도는 내 것과 다르지 않고, 내 인생의 절반도 그럴 것이다.

엄마가 나한테 언니를 줘서 천만다행.

그리고 이 가을에, 그냥 문득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예쁜 조카는 말할 것도 없다. 내 복덩이 조카는, 내 박사 논문 마무리의 가장 큰 공신이다.




마지막은, 이 가을을 즐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가을에 단풍을 즐겨본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독일에서는 가을에 소위 Goldener Herbst라고 하면서 황금빛 가을 이야기를 해도-... 마음 한편으로는 아주 잔잔한 슬픔 같은 게 있었다. 외로웠고 묘하게 괴로웠으니까.

그런데 올해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에 단풍 구경을 제대로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학번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친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내가 미래를 생각할 때, 언니를 끼워서 상상하며 희망한다는 것이다. 무려, 즐거움과 행복을 위한 희망이다.

선후배 이상의 복잡한 관계와 사정에 대해서는 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심지어 부부도 아닌데) 내 미래에 끼워 넣고 있는 완벽한 타인이라니... ㅎㅎ 이런 인연을, 나이 먹어서 대학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정말로 행운아다.




사실, 아직도 이 좋은 가을이 끝나지 않았다. 요 며칠은 날씨도 따뜻하고 맑고 좋아서 더 그렇다. 비가 조금씩 올 때마다 추워진다고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남은 요번 주에도, 그리고 다가올 다음 주에도, 마찬가지로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


오늘부터 쓸 7주의 기록은, 내가 내년에 꺼내 볼 좋은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이 7가지 기록들을 가지고 2025년을 어떻게든 버텨볼 것이다.







* 마법의 가을: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아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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