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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빛나 Oct 21. 2019

Ep 21. 놀이터

어릴 적 나는 공놀이를 무척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은 술로 사회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어릴 적 나는 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학교 끝나면 야구 배트에 글러브를 끼워 들쳐 메고, 아이들이 사용하기에 적당한 연식 야구공을 한손에 들고서 다시 학교로 향했다. 항상 어두워질 때까지 축구, 야구를 하면서 공으로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새로 생긴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곳은 희망하는 반을 지원해서 편성하는 형식이었다. 반마다 특색이 있었는데 이런 식이었다. 

5학년 월드컵반, 5학년 올림픽반, 5학년 미술반 등... 나는 월드컵반을 갔는데, 아침에 남들보다 30분 일찍 등교해서 매일 축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찌 보면 조기교육일 수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조기축구였다. 

처음에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것도 의무감에 계속하다보니 점점 축구에 흥미를 잃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이에게 다른 장난감보다 공을 가지고 놀아주는 것을 선호한다. 

항상 공만 보면 사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아이도 공에 흥미를 가지기를 원했다. 

내 욕심으로는 돌잡이도 공으로만 하고 싶었다. 아마 집에서 했더라면 그랬을 수도 있다. 


∫ 흙이 없는 놀이터가 안전할까


요즘 놀이터에서는 흑을 보기가 어렵다. 안전과 청결을 위해 탄성고무 재질로 된 놀이터가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연구된 결과에 의한 것이겠지만, 이런 놀이터에서 아이는 정해진 놀이기구만 타고 놀 수 있다. 가끔은 창의력이 샘솟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정형화된 놀이터는 재미가 없다. 인공적으로 갇힌 놀이터에서 아이는 새로운 것을 찾아 탐험할 수도 없다. 그런 아이들은 올라가면 안 되는 곳까지 서로 올라가서 위태롭게 놀 때도 있다. 

우리 아이는 모래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해서 놀이터에 가더라도 주변에 화단을 서성거리면서 개미를 보고, 돌을 줍고, 흙을 만지며 논다. 나는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놀 때면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시골에서 살 때는 여기저기 흙이 널려 있었는데, 부산에 계신 할머니댁에 갈 때면 흙을 만지려고 보니 돈을 내서 가는 키즈카페가 아니고서는 흙을 찾기가 어려웠다. 자연에서는 뭔가를 가르치려고 관심을 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궁금증을 갖는다.  

     

∫ 집은 놀이터가 아니다.


아파트 1층은 창문도 마음 놓고 열지 못하고, 사생활이 보장받지 못하고, 집 앞 주차된 차량에서 나오는 매연을 그대로 받아야 하고, 난방비도 더 나오는 등의 안 좋은 얘기만 들어서 그런지 처음에 아파트 1층을 배정받고서 당황했다. 그래도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아파트는 꽤 오래된 아파트에다가 관사로 운영되고 있기에 층간소음을 끼고 살아야 한다. 가끔 윗집에서 울리는 휴대폰 진동음을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으로 착각할 때도 있고, 아이가 우는 소리는 닫힌 창문도 뚫고 아래까지 온전히 전해진다. 

집에서 걸을 때도 발 뒤꿈치를 조심하지 않으면 온전히 충격이 아래층에 전달된다. 


내가 처음 1층의 매력을 느낀 것은 아이가 공을 던지면서 놀기 시작할 때였다. 

우리집은 아무리 공을 던져도 밑에서 불평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걱정없이 뛰어놀게 했다. 나도 덩달아 아이와 함께 뛰어 놀았다. 


처음으로 층간소음의 무서움을 느낀 것은 춘천으로 놀러갔다가 동료 집에서 가족이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집도 오래된 아파트에 4층에 위치한 집이었다. 아침부터 우리 아이는 아무생각 없이 그 집에 있는 공을 던지고 놀았고, 나도 같이 던지며 놀았다. 

문제는 정확히 공을 던진 지 1분도 되지 않아서 아래층에서 올라온 것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씻다가 물기도 안 닦고 올라온 것 같은 아주머니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최대한 정중하게 얘기하고 있었지만 표정과 말투에서는 짜증이 가득했다. 나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하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 이후 상황은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쫓아다녔다. 혹시나 뛸까봐 혹시나 뭘 떨어뜨릴까봐 혹시나 소리지를까봐... 집이 아니라 감옥 같았다. 저절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서 빨리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 이후로 층간소음의 무서움과 왜 아이가 있는 집은 1층이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집에서 아이도 아빠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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