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는 공통점으로 각자 세 남매의 맏이다.
그래서 처음 연예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공통된 생각은 '우리도 세 명 낳을까? 역시 형제는 많아야 되는 것 같애' 라는 다둥이의 삶이었다.
결혼하면서도 신혼을 더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의 아이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더 컸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 3개월 차에 임신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출산 전까지도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는 생각에 행복했고, 주변에서는 아무리 계획해도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거나 유산한 경우들을 보면서 어렵지 않게 임신하고 엄마와 아이 모두 건강해서 참 감사했다.
우리는 2018년 기준 합계출산율(통계청 발표) 0.98명 대비 3배 가까운 3명의 아이를 처음에 계획했었다. 정확히 그 계획은 아내의 임신 초기까지만 유효했던 것 같다. 입덧이나 일상생활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던 임신 중기 이후부터 생후 24개월 사이에 우리의 자녀계획은 1명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기가 되었다.
우리 부부만 보더라도 3명에서 1명으로 출산계획이 급감할 수 있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출산장려정책도 이 시기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 배려를 해 줄수 있는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기 정부의 각종 지원금이나 정책들은 우리 부부의 자녀계획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다만, 다시 헤쳐 나가야할 상황들이 쉽사리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미 육군이 세계최강의 군대로 거듭나기까지는 수년 간의 공통된 노력이 있었다. 미 육군의 변혁을 다룬 책인 《KEVLAR LERIONS, 케블라 군단, p73》에서는 1989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1989년에 육군 현역 군인 중 50% 이상이 결혼한 상태였는데, 가족 구성원의 수가 현역 장병에 비해 3배가 더 많았다. 직업군인들의 절반이 맞벌이 가정이었다. 군을 떠나기로 결심한 군인들이 군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인 부인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미 육군은 가족문제가 우수자원을 유지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정책적으로 개선해나가게 되었다.
육아전선을 경험해 본 부모들은 재 참전을 기피하고, 아직 육아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혹독하고 치열했던 육아참전기를 보고 들으면서 애초에 시도할 용기조차 내지 못 하는게 현실이 아닐까.
육아정책들은 이런 현실에 입각해서 정책으로 받쳐주는 게 아닌 국가가 함께 키운다는 철학이 녹아들어간 육아정책들이 실현되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