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 큰 애는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했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아직도 장염이 낫지 않았다고 한다. 몇 달 전 두 차례 입원 후 간신히 장염이 잡혀 이제 밥도 먹고 학교에도 잘 다니는가 싶어 한 시름 놓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50kg도 되지 않는 몸무게와 건강상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얼마 전 큰애와 같이 무릎보호대와 손목 보호대를 사러 약국에 갔다. 근력이 약해져 걷는 것이 힘들고 필기할 때 손목이 아프다고 했다. 아무리 살이 빠졌다고 저 정도일까 싶어 엄살이 심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도 이겨내려고 보호대를 사용하는 것 같아 기특했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병치레로 수업을 듣지 못해, 부족한 부분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다행스럽게 여겼다.
큰 애는 그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병이 깨끗이 낫지 않은 것 같고 몸도 예전과 같지 않아 마음속으로 불안해했다. 예전처럼 또 쓰러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근력 부족으로 힘이 부쳐 체육시간에 친구들이 운동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다고 했다. 공부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고 자신감도 떨어져 우울해하는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할 때는 마음이 아팠다. 몸 상태만 살폈지 마음 상태를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큰애의 상황에 공감이 갔다.
나 역시 학교 다닐 때 외모와 공부에 대한 열등감으로 힘든 때가 있었다. 지금 큰애와 같이 친구들과 나를 비교했다. 성적도 오르지 않고 키도 크지 않아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자존감이 극도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체력 저하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불교에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한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을 겪게 된다. 불의의 사고와 생활고, 인간관계 속에 배신과 상처 등 많은 어려움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내몰려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첫 번째 화살을 맞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존감이 높고 긍정적인 사람인 경우,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쉽게 일어서기도 한다. 흔히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상처를 받아 고통스러워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로 자위를 하지만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첫 번째 화살의 상처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기비판, 자기 학대, 열등감, 후회, 원망 등으로 스스로에게 또 다른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의 동물인 우리는 처음 받은 상처에 대해 원인과 이유를 찾아 반성과 성찰을 한다. 그것으로 잊고 지내면 좋지만 말만큼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생각은 저절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잊고 지내려고도 해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정적인 감정이 뒤따라온다. 흔히 인간은 오만가지 잡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온갖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무의식적으로 마음에 걸린 어둡고 힘든 생각을 나도 모르게 붙잡게 된다. 그 생각은 어느새 스스로 집을 짓고 걱정, 근심, 불안, 후회로 내부를 장식한다. 그러면 우리는 고통의 굴레 속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고통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내가 했던 방법은 알아차림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바라보고 호흡에 집중하여 생각의 늪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도록 현재의 의식에 집중하는 것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과거나 미래로 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빠지게 되는데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치료 이야기’ 이라는 책에서 고통은 우리의 생각이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 한다. 과거는 즐겁고 기쁜 추억도 있지만, 후회와 원망도 있다. 미래는 기대감으로 설렘도 있지만,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크다. 인간의 감정은 부정적 감정이 더 강하기에 과거와 미래에서 오는 후회와 불안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결국, 우리의 의식을 현재의 순간에 집중해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이런 말을 다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우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라고 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가져오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자주 생각하면 걱정에 빠져 불안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아직 이해를 못 한 것 같지만 일어나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아는 것만이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큰애가 먼저 말문을 터서 마음속 이야기를 했다는 것으로 감사했다. 아무 말 않고 혼자 괴로워하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잔소리만 하는 아빠라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묘하다. 힘들고 고통 속에 있던 마음도 한순간 깨달음이 오면 별것 아닌 것으로도 털어낼 수 있다. 고통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되어 오히려 성숙해질 수 있다. 아들이 이번 기회에 마음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거듭나서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들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어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