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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May 19. 2022

나이는 어떻게 먹는 걸까?

 하릴없이 나이만 먹었다. 언제 어떻게 세월이 흘러 쉰 살이 넘었는지 되돌아보니 찰나처럼 짧다. 서른 살이 되던 새해 첫날, 성당 후배들은 ‘계란 한 판’이라고 놀려댔다. 혈기왕성하고 싱그러운 이십 대, 후배들은 어제까지 같은 연배인 나를 소외시키려는 듯 장난기 어린 말로 내 나이를 표현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새해 첫날, 생각지 못한 ‘계란 한 판’ 소리는 씁쓸하고 충격적이었다. 마냥 이십대로 있을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 서른이라는 나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했다. 젊어서 그런지 그때는 나이를 먹었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이 먹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가끔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 하며 깜짝 놀랐기도 하지만 이내 곧 아무 일 없듯 일상에 묻혀갔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이를 먹는 것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시간도 그렇게 주마등처럼 지나갈 뿐이었다.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면 남들에게 자랑할 말한 그런 대단한 것은 없다.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아웅다웅 살았던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 삶이었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지만, 후회나 미련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때 그 상황 속에 웃고 울고 버티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의 퇴적물이기에 지금 이 대로를 인정하고 싶다.     


 12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워터 파크에 갔었다. 젊었을 때도 같이 수영장에 가셨던 아버지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라며 어색해하셨다. 그 후로 아버지는 수영장에 가신 적이 없다. 분명 수영장은 같은데 세월이 흘러 수영장이 워터마크로 변했고 찾아온 사람들은 그 시절 사람이 아닌 손자뻘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당신의 몸도 예전과 다르기에 남 앞에 보이는 것이 어색했을 것이라 짐작이 갔다.     

 

 이제 서서히 그 어색함이 무언지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점심때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먹기에 불편함이 없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찾아가곤 한다. 얼마 전 점심을 먹으러 수제 햄버거집에 갔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 우연히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얼마 안 되지만 나 말고 전부 이십 대였다.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의 나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아버지가 예전 수영장에서 어색해하셨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서 왔는데 영화 속 첩보원도 아니면서 짧은 순간, 가게 인테리어와 식당 주인, 아르바이트생, 식사하는 사람들의 나이와 성별, 먹는 음식 등을 살피게 되었다. 곧바로 나와 비교하는 인식의 작용이 일어났다. 물론 그들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진한 고동색 나무의 마룻바닥과 미국풍의 가게 인테리어까지 젊게 느껴져 어색함을 더 하게 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당황스러웠다.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나 자신을 보며 이제 나이 먹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동안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비슷한 무리 속의 일원으로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염색하지 않으면 백발인 머리와 곳곳의 주름 진 얼굴을 보면 더는 무리 속에 있기 힘든 것 같다. 문득문득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고, 한참 만에 지인의 이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벼운 운동이 뒷날 통증으로 변하는 신체의 변화를 느낄 때면 젊음에서 점차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100세 시대에 현재 나이를 4로 나누어 하루 24시간에 대입해보면 나의 시계는 13시 25분이다. 아직 절반이 남아있어 다행이라 여겨지지만 남은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낼 것인지 생각하면 고민이 된다. 얼마 안 남은 은퇴의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15시 이후의 삶이 만만치 않다. 무엇을 하고 살지 대비해야 한다고 마음속 경고음이 울린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살아온 세월을 보니 살아갈 시간도 금방 지나갈 것 같다. 어영부영하며 지나온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에 더욱더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아직 13시가 조금 넘어 시간의 여유가 있어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도 시간은 찰나와 같아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큰 수확이다. 아직 초보라 습작하는 기분이지만 나름 고민하면서 글 주제와 관련된 책을 읽다 보니 작가 흉내를 내는 것 같아서 스스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더 많은 독서와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지만 이왕 내친김에 책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이 먹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다 문득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인생 시계를 보게 되었다. 젊은 친구들에게 스미지 못하는 어색함으로 불편해도 기죽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또 다른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13시가 조금 넘어 수확해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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