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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May 01. 2022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억하며

가짜 뉴스의 무서움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스럽지 않았다. 얼마 전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TV 프로를 유튜브를 통해 보면서 그동안의 생각이 바뀌었다. 사치와 환락으로 프랑스 민중의 인심을 잃고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희대의 악녀인 줄 알았는데, 사실과 달랐다. 백성들이 빵이 없어 굶주리고 있을 때, 그녀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냐?’라는 말로 공분을 샀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이 말을 듣고 프랑스혁명 발발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는데, 이마저도 그녀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당시 프랑스는 왕과 귀족의 사치와 각종 전쟁으로 재정이 어려운 상태였다. 평민들의 세금으로 면세 특권을 누리는 성직자, 귀족을 부양하는 사회였다. 기상이변으로 농업 생산량 감소, 물가폭등으로 시위와 약탈이 빈번했다. 언제 혁명이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촉즉발의 혼란기였다. 특권층의 사치 생활은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만만한 적국 출신인 그녀가 ‘욕받이’가 되어버렸다. 혁명세력은 이점을 이용해 그녀가 ‘자궁의 충동’을 가졌고, 아들 샤를을 성추행하는 음란한 여인으로 몰아갔다. 혁명의 정당성을 위해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과장되게 부풀렸던 것이다.          

 

 사실, 알려진 만큼 그녀의 사치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 없다고 한다. 프랑스 왕실 예산의 10%밖에 쓰지 않았고 오히려 검소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 적국과 내통했다는 소문은 근거도 없었다. 죽음 앞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았으며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라고 하는 그녀의 글은 그녀가 사치 향락에 빠진 생각 없는 왕비가 아니었음을 알게 해 준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자란 그녀의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향이 억울하게 작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가짜 뉴스로 수없이 뒤바뀌었다. 지배 세력은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권력 쟁취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때로는 자신이 일으킨 행위의 명분을 쌓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분노와 공포감을 조성하여 누군가를 희생시켰다. 64년 7월 18일 로마의 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방화범으로 의심받은 네로 황제는 자신의 안전과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기독교인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어 잔인한 박해를 시작했다. 당시 기독교도는 고대 로마 신과 황제 숭배를 거절하여 온갖 비난을 받았었고 권력도 없었기에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만만했던 것이다.

        

 “세계사를 뒤바꾼 가짜 뉴스”라는 책에서 명나라의 정화함대는 명 황제 영락제가 천명을 받아 황제가 된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일곱 차례 인도양으로 항해했다고 한다. 무력으로 제위를 찬탈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자 영락제는 벼슬아치들을 멀리하고 환관들을 중용했다. 환관 정화는 동아프리카의 희귀 동물인 기린을 운반하거나 인도양 주변 지역에 사절을 실어 나르는 별 소득이 없는 해외 원정을 이끌었다. 외국 사신들이 명나라까지 찾아온다는 것과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기린을 싣고 난징에서 북경까지 행렬함으로써 천명을 받은 황제임을 만천하에 알리려고 했다.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네덜란드 공산당원이었다.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은 하늘이 준 기회라 여기고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키기 위한 계획이라 주장하고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89명의 공산당 의원이 국회에서 추방당했다. 이 일로 나치가 새로운 의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독일의 모든 권력을 위임하는 수권법을 통과시켜 독일은 오직 하나의 정당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나치당의 독재체제를 완성하였다.     


 수많은 가짜 뉴스가 역사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시대에도 범람하고 있다. 과거에는 언론사 소유자, 권력자만이 정보를 생성하고 전달하며 여론을 조작했다. 오늘날은 소셜미디어와 1인 미디어 생산자의 급증으로 검증할 수 없는 많은 주장의 글과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 코로나 백신 접종과 관련된 가짜 뉴스, 대선 정국에서 난립한 ‘카더라 통신’ 등 음모론과 진영 논리 앞에서 진실은 사라지고 주장만 범람했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 같이 계획하고 꾸민 가짜 뉴스를 파악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AI가 미래 산업에 핵심기술로 받아들여 가전제품에서부터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 사용되고 있다. KAIST 정재승 교수는 ‘인간의 뇌는 신체의 약 2%밖에 안 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에너지의 23%를 뇌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머리를 쓰는 것이 힘들기에 인간은 복잡하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구글이나 유튜브 등을 사용하다 보면 AI 알고리즘에 의해 내 취향의 정보를 파악해서 비슷한 정보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 안 그래도 머리 쓰기 싫은데 고민 없이 취향에 맞는 정보를 보게 되니 편리하다. 점점 고민하고 복잡한 것을 멀리하게 되면서 확증편향*이 심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뉴스와 기사를 보면 분노가 일어난다. 같은 사실을 가지고 다르게 해석하고 아예 사실을 왜곡하는 모습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은 무엇인지 혼란과 혼선을 겪는 경우가 많다. ‘같은 국민으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견의 깊이는 깊고, 다양한 진영논리는 갈등의 대상을 확대하고 있음을 느낀다. 정치인은 자신들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상대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유발하는 언행을 하고, 1인 미디어 운영자는 거기에 편승해 자신들의 클릭 수를 올려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정보 홍수 속에서 많은 뉴스, 기사를 보지만 나도 모르게 내 입맛에 맞는 기사에 선택적 노출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해 보겠다고 상반된 주장의 기사를 읽지만, 입맛은 안 바뀌는지 내 생각에 동조하는 기사들을 더 찾게 되고 댓글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확증편향으로 사고가 귀찮아지면서 분노만 쌓여간다. 삶이 팍팍해져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 불만만 쌓여서 그런지 더 심해짐을 느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과 죽음, 역사 속 수많은 가짜 뉴스를 보면서 분노와 공포가 집단으로 퍼져 광기에 휩싸이면 잔혹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 인류의 모습에 무서움을 느낀다. 왜곡된 이미지로 역사에 남은 그녀의 억울함과 그 외 수많은 희생양은 오늘날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고의 구두쇠가 되어 잦은 분노를 느끼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억울한 희생양이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확증편향 :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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