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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Sep 25. 2022

하늘, 구름 그리고 삶

마음의 자유를 찾아 

 남악의 하늘은 파랗게 펼쳐져있다. 7월의 인사이동으로 이곳에서 근무한 지 3개월째다. 내리쬐는 햇볕이 강렬하다. 사무실 밖으로 나갈 때면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다. 바닷가 부근이라 해풍 때문인지 공해를 볼 수 없다. 최근 중국의 경제 상황이 예전만 못해 미세먼지가 줄어 이곳 하늘이 맑아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연일 날씨가 쾌청하다. 기후 위기로 가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빼면 맑은 하늘이 반갑다. 


 눈이 안 좋아 40대 초반에 노안이 왔다. 안경광학과 교수인 아내가 ‘먼 곳을 자주 보는 것이 좋다’라고 해서 근무하는 건물의 2층에 필로티 구조의 베란다를 찾아가곤 한다. 그곳은 하늘을 바라보는 나만의 아지트다. 앞뒤가 뚫려 있고 맞바람이 불면 제법 시원한 곳이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 먼 하늘을 보는데 안성맞춤이다. 멍 때리며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다양한 형태의 구름이 어우러져 있는 멋진 장면을 자주 보곤 한다.


 화선지에 난을 치듯 한 줄기 구름이 힘차게 뻗다가 여운을 남기듯 희미해진다. 여기저기 휘놀고 다니다 지쳐 잠시 쉬는 새털구름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솜뭉치가 여기저기 둥실둥실 떠나기도 하고, 구름 위에 구름이 덧붙여 있어 부풀린 빵처럼 보이기도 한다. 뭉게구름은 각진 마음을 무디게 한다. 커다란 구름 덩어리는 우주 영화 속 비행선이 움직이는 것처럼 아주 서서히 움직인다. 


 외근으로 지방도로를 가다 보면 파란 하늘에 구름이 걸려 있는 모습에서 평온한 분위기에 젖고는 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녹음이 짙은 산과 들이 펼쳐져 목가적 분위기가 연출된다. 바쁜 일상에서 이런 분위기를 접하면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어 진다.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옆자리에 앉은 후배도 덩달아 ‘맞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후배도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25년 전 친구들과 강원도로 놀러 갔을 때의 하늘과 흡사하다. 결혼하기 전이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걱정이 없던 시기였다. 바닷물에 몸을 둥둥 띄워 하늘을 바라보면 뭉게구름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편안한 기분에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었다. 지금도 그 순간의 편안함을 잊지 못한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들어선 지 몇 해가 지났다. 공자님은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세상의 이치는커녕 하늘의 뜻도 몰라 먼 하늘만 바라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요즘 세태에, 2,000년 전 나이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쉽지 않다. 공자님께서 나이에 의미를 붙이시는 바람에 나잇값도 못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공자님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천명,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하늘의 뜻이라고 하지만 알 수는 없다. 농경시대의 하늘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농사를 짓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빛은 절대적이었다. 한 해의 농사가 풍년이 될지 흉년이 될지는 하늘에 달려있었다. 천둥, 번개, 홍수, 가뭄 등 하늘에서 내리는 자연재해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다. 인간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있었기에 하늘이 인간의 삶을 주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예로부터 왕은 자신의 정당성을 하늘의 뜻과 연관시켰다. 역성혁명을 일으켜 왕이 된 자들은 하나같이 전(前) 왕조가 백성과 하늘의 뜻을 저 벼렸기에 새로이 천명을 받은 자신이 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망한 나라의 왕은 권력의 횡포, 사치 향락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백성들을 돌보지 않아 민심이 떠났다고 한다. 민심이 곧 하늘이기에 그들을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명분을 찾았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하늘도 결국 승자의 편에 서 왔다. 


 영화 ‘신세계’에서 이중구 (박성웅)는 조직 내 자리싸움 중에 경찰의 술수에 말려들어 부하들이 모두 죽거나 경찰에 잡혀 들어갔다. 반대파 보스인 장청(황정민)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자신의 파벌이 와해된 것이다. 구치소에서 나온 그를 마중 나온 부하는 아무도 없었다. 장청의 부하들만이 복수를 위해 이중구의 아지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을 감지한 그는 산 정상으로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하늘을 바라본다. 무표정하게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고 말한다. 이후 죽음을 맞는다. 


 인간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운명이 여기까지였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인다. 그 순간 어김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시간만 다를 뿐 수많은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운명을 하늘과 연관 지었다. 도달할 수 없는 하늘에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는 셈이다. 힘에 부친 인간이 얻은 결과는 스스로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하늘의 뜻,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지는 알 것 같다. 여러 해 동안 자녀 문제로 속을 썩은 선배가 있었다. 얼마 전 만나 자식 이야기를 하다 문득, 신이 자식을 준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순간,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자식뿐이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느님을 믿고 기도를 하고 있지만, 하느님은 내가 원하는 기도를 들어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외모, 신체, 두뇌 등 남과 비교해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채워달라고 기도를 드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후에도 기복적인 기도는 끊이지 않았지만 내 기도는 ‘고요 속의 외침’이었고 하느님은 ‘대답 없는 너’였다. 예전 성당에서 교육을 받을 때 신부님께서 ‘기도란?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기도를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때가 있다. 원하는 기도를 들어주어서가 아니다. 기도의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대하는 나 자신의 마음이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였다. 나로 꽉 차 있다가 예수님 시각으로 채워지는 순간, 그동안 억눌려 있던 것이 풀리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맞이했었다. 예수님도 십자가 죽음 앞에서 살려달라는 기도 대신 당신 뜻대로 하시라고 하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셨다. 우리의 삶도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역설적이게도 더 큰 자유와 평화를 주시는 것 같다.


 내 뜻대로 안 되기에 하늘에 맡기고 사는 것, 일어난 모든 일을 그대로 수용하며 사는 것이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것이다. ‘안되면 어떡하지……. 하며 그 결과까지 고민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원하지 않는 결과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서 더욱 집착하게 된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분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것 같다. 


 여전히 수용할 수 없는 결과로 괴로워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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