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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Mar 07. 2022

코로나 피난민

역병이 존재에게 주는  아픔

 가족이 둘로 나뉘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 아내와 큰애는 양성, 나와 둘째는 음성이다. 가족 간의 보이지 않는 전선(戰線)이 생겼다. 집안의 침실과 애들 방이 각자의 주둔지가 되었다. 두 개의 진영이 자연스레 형성되며 공격 없는 방어전이 시작되었다. 전날까지 있던 화기애애함은 역병에 눌려 사라지고 정적만이 거실을 사이에 두고 흐르고 있다.     


 지난 화요일 오전, 아내의 코로나 양성 판정 소식은 믿기지 않았다. 아내는 3차 백신 접종도 했고 방역을 위해 외출이나 여행도 최대한 자제해왔다. 과하다 할 정도로 조심하고 신경을 써오던 터라 아내의 확진은 전혀 뜻밖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내내 우리 가족은 함께 움직였기에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나와 애들은 보건소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쌍둥이 아들은 이미 학교에서 다른 학년, 다른 반 확진자로 인해 여러 차례 PCR 검사를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엄마가 확진자여서 애들은 이전과 달리 긴장하고 있다. 전날까지 한방에서 같이 자고 생활했던 나 역시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기다 전날 회사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했기 때문에 엄청 신경 쓰였다.     


 다음 날 오전 검사 결과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첫째가 양성이란다. 다 같이 양성도 아니고 누구는 양성이고 누구는 음성이라 하니, 바이러스가 우리를 갈라 치기 한 셈이다. 자기가 기생하기 좋은 숙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아내와 약간의 편식기가 있는 큰애를 어쩌면 정확히 골라낸 것이다. 증세가 없고 가족 중 제일 방역을 잘했던 큰애는 억울해하며 마지못해 아내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2:2가 되어 각자의 진지(陣地) 안에서 생활했다. 아내와 첫째는 KF 94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장갑을 끼고 손 소독제를 갖추었다. 나와 둘째도 집에서 안 쓰던 마스크를 쓴 채 소독제를 하나씩 들고 다녔다. 각기 무장을 한 채 잠시라도 거실과 화장실을 사용할라치면, 이용자와 이용할 사람 모두 환기와 소독, 손 씻기 등의 절차를 거쳤다. 집은 소독제가 난무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반나절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소화도 안 되고 답답하다. 우리 편만 그런 게 아니다. 아내의 진영 내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5일을 버텨야 한다고 하니 차라리 모두 양성을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대로는 서로가 힘드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결국, 우리가 피난 가기로 했다. 둘째를 데리고 저렴한 비즈니스호텔로 향했다. 서로의 방역과 생활의 편의를 위해 스스로 코로나 피난민을 자처한 것이다. 아내는 첫째를, 나는 둘째를 데리고 각각 생활하기로 했다. 나름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짐을 싸고 나와 운전대를 잡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운전하는 내내 아픈 사람을 버리고 나온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2년 전 코로나 초기에 각종 방송 매체를 통해 보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호흡기에 온갖 장치를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모습, 어떻게 염한지도 모른 채 꽁꽁 싸매진 부모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눈물로 작별하는 자식의 모습, 묻을 곳이 부족해서 다시 묘지를 파헤치는 모습 등, 참으로 보기 힘든 장면이다


 백신이 나오고 몇 번의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다, 이제는 정도가 덜한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대세가 되었다. 확진되어도 7일간 자가 격리하면 된다고 하니, 코로나 초기 방송에서 보았던 공포와 두려움은 많이 희석되었다. 감기 증세와 유사하다는 정보와 백신을 맞으면 상대적으로 중증 덜 할 수 있다는 정보는 ‘괜찮겠지’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피난을 나온 나는 이제 보급병이 되었다. 아내와 큰애를 위해 필요한 약을 대리 처방해 주고 필요한 물건을 현관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아내의 지시에 따라 둘째 녀석 교복을 찾아오고 학교에 제출할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애를 데리고 사진관에 갔다. 같이 있을 때는 감염방지에만 신경을 쓰다 이제야 환자를 돌봐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 같다.      




 역병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그 전염성은 개인의 생존을 공격하기에 인간은 경계심만 있을 뿐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엄성은 없어지나 보다. 아내가 코로나 확진 후 보건소에서 제대로 연락을 받지 못했다. 걱정하는 아내를 위해 나는 PCR 검사를 받은 후,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보건소 건물 1층으로 들어섰다.    

 

 순간 입구에 계시던 여성 직원이 깜짝 놀라며 “PCR 검사받은 분은 들어오면 안 된다.”라고 했다. 내 앞에서 소독제를 사정없이 뿌려대고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나가서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대충 이야기를 듣더니, 전화번호만 알려주고 황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짧은 순간에 겪은 일이지만 기분이 유쾌할 리 없다. 매일 같이 코로나 환자를 최일선에서 상대하고, 그로 인해 겪는 고충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미 확진자 취급을 하며 유난 떠는 모습에서, 사람이 아닌 바이러스 숙주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불쾌감을 잊은 듯 며칠 후 나도 상대에게 불쾌함을 준 일이 있다. 호텔에서 나흘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가기 전 마트에 들렀다. 장을 보고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나이 드신 어르신이 세면대에서 심한 기침과 가래 끊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간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손 씻기가 내키지 않았다. 그냥 나가는 것도 꺼림칙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손 씻고 얼른 나와버렸다.     


 순간 나 역시 보건소 직원처럼 그 노인을 바이러스 취급함에 스스로 놀랐다. 노인의 기침과 가래로 고통스러운 모습을 안타까워하기보다,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물로 생각한 것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안전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항변하지만, 나 역시 다를 바 없음에 할 말이 없다.      



 

 일주일 자가격리를 마친 아내와 첫째, 음성 판정을 받은 우리는 다시 일상을 찾기 위해 긴장이 흘렀던 거실 공간을 용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가족은 한 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소중한 일상의 파괴는 지금도 생활의 리듬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 며칠 동안 생존을 공격하는 코로나로 인해 인간의 민낯을 본 것 같아 씁쓸했다. 고의적인 소행이 없어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상대를 불쾌하게 여기고 미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펐다. 나의 생존을 위해 1차원적 생각만 있고 상대는 안중에도 없었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코로나 피난민으로 겪은 5일간의 생활보다 이러한 점을 느끼게 된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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