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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Mar 25. 2022

즐겁지 않은 병원쇼핑

장염 걸린 아들과 나의 엘보우 치료  

 큰애가 또 아프다.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간 병치레를 했는데 이번엔 장염에 걸렸다. 밥도 못 먹고 구토와 설사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 장염을 여러 번 겪어봤던 내 경험 때문인지 큰애의 증세가 걱정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큰애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끼니때마다 죽만 먹는데 그것마저 소화를 시키지 못해,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에서는 장염 말고 다른 데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일주일 이상 죽만 먹으니 애가 배도 고프고 힘들었나 보다. 엊그제 병원 진료 중에 의사가 밥을 먹어도 되고, 고기로 영양 보충해도 된다는 말에, 큰애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저녁 소고기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경험상 말리고 싶었다. 복통이 덜할 뿐 아직 소화력이 떨어져 밥을 먹는 것은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날 병원에 갔었는데, 애가 아프다고 다음날 또 다른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을 놓고 아내와 말다툼이 있었다. 큰애에게 밥 준 것을 놓고 또 다투기 싫어 아무 말 안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큰애의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병이 가볍고 흔한 증상이라면 대수롭지 않지만, 이번처럼 잘 안 낫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전해도 차도가 없는 경우는 당황스럽다. 다시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왜 이렇게 안 낫는 것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스스로 분석을 해본다.      




 나도 큰애처럼 1년 전부터 골프 엘보우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처음에는 통증으로 양치질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러다 팔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몰라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해 별점과 리뷰 기준으로 병원도 가고 한의원도 찾아갔다.     


 찾아간 병원마다 의사의 치료 방법이 달라 어떤 방법을 따라야 할지 헷갈리고 고민이 되었다. 어느 의사는 팔을 사용 안 하고 놔두면 괜찮아진다고 하며 특별한 치료 없이 물리치료와 약만 지어준다. 주사 맞고 자극을 가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통증으로 생활이 불편하고 가만히 놔두면 더 악화될 것 같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떤 의사는 각종 주사를 팔꿈치에 놓고 체외충격파로 팔꿈치에 충격을 가해 염증을 호전시키는 방법을 쓰고, 다른 의사는 초음파를 보며 주사를 여러 군데에 놓는다. 상당한 고통이 뒤따른다. 한의원에서는 의사마다 자체 개발한 약침이니 벌침이니 하는 것으로 통증 부위와 생각지 않은 곳에 침을 놓기도 한다.    

  

 이렇게 몇 번의 치료를 받다 보면 이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더 이상의 시간 낭비, 돈 낭비, 몸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앞으로 몇 번 더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지, 정말 낫기는 하는 건지, 전문가가 아니기에 판단하기 정말 어렵다.      


 경험상 한 병원에 가서 바로 나은 적이 없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병이 나은 경우가 많다. 나의 골프 엘보우도 서너 군데 병원을 돌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가끔 생각해본다. 병이 나은 것이 정말 명의를 만나 나은 것인지, 병을 낫기 위한 내 정성 때문인지, 아니면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인지, 궁금하다.




 이렇게 병원을 전전하는 것을 ‘병원쇼핑’이라 한다. 2015년 메르스가 한창일 때 신조어로 등장한 것이 ‘병원쇼핑’이라는 말이다. 환자가 쇼핑하듯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닌다는 것인데, 값싼 국민건강보험 혜택과 동네 의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병원쇼핑’, ‘의료쇼핑’이라는 조어(造語)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낫기 위해 ‘화타’를 찾아 헤매는 것인데, 그것을 쇼핑하듯이 돈 주고 쉽게 의료서비스를 받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건강할 때 하는 쇼핑이야 즐겁지만, 몸이 아플 때 하는 쇼핑은 고통이다. 더욱이 가는 곳마다 재검사, 추가 검사는 여러 측면에서 부담이 된다. 굳이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의사 말마따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쇼핑은 구매를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지만, 병원은 치료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가는 곳이라 두 단어의 조어는 어색하다.      



 

 결국, 큰애는 학교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2주 이상 죽만 먹고 설사와 구토로 몸의 기운이 떨어져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전에 병원 가서 영양제도 맞고 이상이 없다고 해서 곧 낫겠지 하는 기대는, 전화기 넘어 들리는 아내의 울음소리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가는 병원마다 검사를 추가했고 장염 말고 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아직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과 장염 경험자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의 안이함을 자책한다. 아들의 병원쇼핑을 복기해보지만 결과적으로 3주간 고생한 큰애만 안쓰러울 따름이다.     


 의사도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낫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안다. 의사가 그 많은 환자를 다 고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잘 낫지 않아 병원을 전전했던 큰애와 나의 모습, 오늘도 병원쇼핑을 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을 보면 어떻게든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화타’를 찾는 것이 막막할 때면 가끔 ‘배달의 민족’이나 ‘야놀자’ 같은 앱 서비스를 생각하게 된다. 병원과 의사의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의 진료 경험과 완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겪는 병원쇼핑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쩔 수 없이 병원쇼핑을 하는 환자들 모두 빨리 쾌차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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