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이 하얗게 피었다. 회색의 아파트 벽을 배경으로 나무는 순백으로 가득하다. 탐스러운 하얀 꽃은 목선이 드러난 한복 입은 여인을 연상케 한다. 자태가 곱고 아름답다. 아침, 저녁으로 무수히 지나쳤지만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무는 하얗게 만개하였다. 칙칙한 아파트에 군계일학으로 피어있는 목련 덕분에 아파트가 화사해진다.
목련 옆의 작은 동백꽃도 활짝 피어있다. 목련보다 훨씬 이전에 앞서 피어있음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빨간 동백꽃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피어도 어울릴 것 같다. 겨우내 추위와 흰 눈을 뚫고 피워 낸 빨간색이 돋보이고 귀하게 느껴진다. 목련의 우아함 못지않은 정열의 붉은빛이다.
수개월 전부터 점심 식사 후 사무실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공원은 겨울이 더 쓸쓸했다. 광장의 텅 빈 곳은 사람보다 삭풍이 더 많이 찾아왔다. 빈 의자에 차곡차곡 사람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날씨가 풀린 것도 있지만 산수유, 벚꽃 등의 꽃망울이 터지면서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겨우내 한산하고 을씨년스러웠던 공원은 활기가 넘쳐난다.
산수유가 제일 먼저 노란 꽃을 피웠다. 앙상한 가지에 어느새 붙었는지 모르게 쪼그마한 알갱이가 붙어있다. 토속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산수유는 화려하지 않지만 옅은 노란색이 정감을 준다. 공원 반대편으로 흰색과 분홍색의 벚꽃 두 그루가 색채감을 더한다. 아직은 추운 날씨로 개화가 덜 되었지만, 조만간 만개하여 공원을 가득 물들일 태세다.
산책하면서 산수유, 벚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엄동설한의 벌거벗은 나무는 모두 똑같이 보였다. 살아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잎은 다 떨어지고 메말라 생기 잃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나목(裸木)은 옆에서 뽐내기 시작하는 산수유의 화사함을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다. 계절이 부르는 순서대로 꽃피울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조만간 꽃과 잎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것 같다.
지난 1월, 눈 내리는 밤거리를 산책한 적이 있다. 가로등에 비춰 눈발이 흩날리고, 초승달이 수줍게 떠 있어 운치를 더하는 밤이었다. 가냘픈 나뭇가지 위로 눈이 쌓여 메마른 피부를 덮어주었다. 나무 위의 하얀 옷은 가로등 불빛으로 더욱 반짝였다. 생기 없던 칙칙함은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걷다 나무에 기대었다. 손에 차가운 물기가 만져졌다. 녹은 눈이었다. 순간 추위에 나무가 동상에 걸릴까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모르고 지내왔던 나무의 겨울나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 얼지 않으려고 물기를 최대한 줄이고, ‘겨울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잎을 모두 내다 버렸다. 내버린 잎들은 뿌리를 덮어주는 이불이 되어 추위를 막아준다. 나무는 잎이 떨어지기 전, 여름부터 ‘겨울눈’을 준비했다. 생명 나기의 치밀함과 생존을 위한 그들의 몸부림은 시간과 함께 이어간다.
이렇게 겨울눈에서 피어난 꽃들은 노랗고 하얀 저마다의 고유색을 드러내며 군집 속에 어우러져 펼쳐진다. 코로나의 확진이 정점에 이르고 있다고 하나, 벌써부터 꽃놀이 장소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상춘객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겨우내 어둡고 칙칙한 나무만 보다 카드섹션을 벌이듯 화사하게 펼쳐지는 봄꽃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꽃을 보면 우리는 거의 100% 진짜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도저히 인위적으로 지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듀센 미소’라고 하는데, 인간은 꽃을 보면 그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뺨 근육이 땅겨 올라가면서 눈은 가늘어지고 눈꼬리에 주름이 잡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어떤 사물보다 인간은 꽃을 대할 때 100% 행복한 반응을 보이기에, 우리는 꽃놀이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이번 주말에는 꽃구경 가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피곤에 지쳐 쉬려고만 한 아내는 이번엔 흔쾌히 따른다.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에 콧바람이라도 쐬면서 활기를 찾고 싶다. 산수유, 매화, 벚꽃이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듀센미소’를 짓고 싶다. 이미 마음속은 활짝 핀 벚꽃으로 가득하다.
봄꽃은 생명체에 대한 나의 무심함을 일깨워 주었다. 한 송이 예쁜 꽃 뒤에 숨겨진 그들의 인내와 고통을 알기에, 꽃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