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 서해는 검푸르다. 봄비 내리는 잿빛 하늘을 쫓아 바다는 푸른빛을 잃어간다. 겨울바다의 쓸쓸함은 인적 없는 바닷가에 짠 내와 같이 떠돈다. 관광객을 바다로 데리고 가기 위해 만들어진 빨주노초파란보 무지개색 데크길만이 멀리서 눈에 띈다. 무채색을 배경으로 유채색의 화려함이 황량한 겨울바다만 드러낸다. 떠나가는 겨울을 봄비만이 위로할 뿐이다.
바다로 약 400m가량 나있는 데크 길 끝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 있다. 물이 빠진 바다는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빈 조개껍데기들과 석화껍질이 사방에 널려 있고 물 빠진 갯벌에는 기대했던 게나 짱둥어 같은 생명체는 볼 수 없다. 찬바람이 더 깊은 모래 속으로 숨어 바닷물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것 같다. 모래밭의 해안가에서 바다로의 진입은 바다가 허락하는 밀물 때만이 가능하다. 몇 사람이 이틈을 타 양동이를 들고 뭐라도 캐려는 듯 발자국을 찍으며 돌아다닌다.
바닷물이 빠져 드러난 바위에 갈매기가 군데군데 앉아 있다. 옆에 있던 큰 처형이 갈매기가 아닌 것 같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흰색의 갈매기가 유난히 예쁘게 보였기 때문이다. 갈매기가 저렇게 예뻤나 생각이 들 정도다. 바닷새로 갈매기 밖에 아는 것이 없지만 바다에서 흔히 보는 갈매기가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회색빛 하늘과 검은 바위의 무채색은 명도와 채도가 없기에 흰색의 갈매기가 예쁘게 보이는 것 같다.
관광객 중 한 남자가 얌전히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를 새우깡으로 유혹한다. 새우깡을 날리자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정지비행을 하면서까지 던져진 새우깡을 용케도 받아먹는다. 반세기 동안 과자로 우리 인간의 맛을 지배해 온 새우깡의 위력은 갈매기에도 통했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일렬로 날아와 던져진 새우깡을 받아먹고 다시 돌아나간다. 던진 새우깡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갈매기 입으로 들어간다. 묘기처럼 신기했다.
새우깡 하나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한 차례 멋진 갈매기 공연을 보여주던 남자의 빈 새우깡 봉지를 보고서야 사람들은 서서히 시선을 거두어갔다. 짧지만 대단한 쇼였다. 잠시 목적지를 잊고 있던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건강이 좋지 않은 큰 처형과 주말마다 같이 산책을 하는데 이번에는 해수찜질을 하러 왔다. 주말마다 시간이 나면 나는 세 자매 속에 끼여 어색함보다 그녀들의 우애 속에 묻혀 함께 하곤 했다.
해수찜질은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사우나와 뭐가 다를까 내심 궁금했다. 예약된 방에 들어가자 수증기로 앞이 안 보이자 순간 겁이 났다. 나무 마루 중앙에는 직사각형의 빈 공간에 해수가 담아져 있고 약쑥이 있다. 조금 있으니 일하시는 분이 1,300℃가 넘는 유황을 가져와 물에 넣었다. 뜨거우니 절대 물을 만지지 말라며 바가지로 물을 담아 수건에 적셔 안 좋은 부위에 조금씩 찜질을 하라 했다.
아내와 처형들은 이미 한번 와 본 경험이 있어서 물을 받아 두었다가 식혀진 물을 마룻바닥에 뿌려 바닥을 덥히기도 하고 몸에 뿌리기도 했다. 해수의 열기와 수증기가 가득하자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열기로 땀을 빼는 사우나보다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수증기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다 어느덧 시간이 1시간이 넘자 일하시는 분이 차가운 물을 틀었다. 해수물의 온도가 몸을 담글 정도로 낮아지자 우리는 족욕도 하고 차례로 물에 들어가 몸을 덥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절대 물로만 샤워를 하라는 안내를 받고 1시간 30분의 찜질을 마쳤다.
이곳 해수찜은 2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이 지역의 전통으로, 전국에서 가마를 타고 산모들이 찾아다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소나무 장작불로 달군 뜨거운 유황 돌은 알칼리 성분으로 바뀌고 몸에 좋은 약쑥까지 해수에 더해져 피부질환과 각종 부인병, 성인병에 탁월한 치료가 되었다 한다. 크게 아픈 데가 없어서 효과를 바로 알 수는 없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운영하는 전통의 해수찜질을 경험한 것이 나름 의미가 있다.
땀을 빼고 나니 몸을 보하기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때 마침 큰 처형이 연포탕으로 유명한 곳을 안내했다. 이곳 연포탕을 먹으면 다른 곳에서는 먹지 못할 것이라며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처형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오래 걸리니 않았다. 식당 주인이 큰 바가지를 들고 낙지를 들어 보이는데 깜짝 놀랐다.
여태껏 이렇게 큰 낙지를 본 적이 없다. 살아있는 낙지 세 마리를 손가락에 걸고 뜨거운 육수에 여러 차례 담그고 데치기를 여러 번 하다 머리 부분만 잘게 잘라 김과 야채를 넣고 죽을 끊였다. 데친 낙지는 다리만 잘라 커다란 접시에 놓았다. 다리가 길지만 그냥 입으로 잘라서 먹으면 잘라진다 했다. 절대 초장을 찍지 말고 먹어야 낙지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고 씹다 보면 끝맛이 달다 했다.
자신 있게 말하는 식당 주인의 말을 믿고 시키는 대로 아무것도 찍지 않고 낙지만 먹었다. 낙지에서 이런 맛이 있는 줄 몰랐다. 낙지의 부드러운 식감과 시원한 국물을 먹기 위해 먹었던 기존의 연포탕과는 차원이 달랐다. 부드러운 식감으로 계속 씹으니 정말 단 맛이 났다. 낙지다리를 다 먹고 죽을 먹었다. 밑반찬도 맛있어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다. 음식을 먹고 나서 생전 처음으로 이 식당이 계속해서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야 다음에 또 와서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은 나만이 아니었다. 아내와 처형들 모두 만족했다. 이런 식당을 알려준 처형이 고마웠고 몸에 좋은 찜질과 음식으로 초대에 감사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처형은 살면서 추억이 없는 사람이 불행하다며 오늘 같이 추억을 만들어 행복하다 했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갈매기 쇼, 전통 방식의 부드러운 해수찜질, 낙지 본연의 맛을 처음 알게 된 식사는 모두 구체적인 체험으로 행복감을 주어 추억이 될 것 같다. 큰 기대 없이 겪었던 다양한 체험이 하루를 실하게 보낸 것 같아 연휴에 내리는 봄비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