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아침에 갑자기 쇠를 가는 듯 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니 방충망에 매미가 붙어 있었다. 매미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신기했다. 초등학교 때 매미를 잡고 싶었지만 나무에서 소리만 들릴 뿐 도통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어 잡지 못했었다. 그때의 아쉬움이 떠올랐다. 시간은 동심과 같이 흘러 매미에 흥미가 없어졌지만 매미가 이렇게 가까이 날아오니 괜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퇴근 후에도 매미가 저렇게 아파트 방충망에 붙어 있었으면 했다. 어릴 적 추억과 신기함이 나로 하여금 그 녀석을 최대한 붙잡아 두고 싶어 조심조심했다. 그 바람은 방안까지 울리는 매미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공해로 느껴지면서 금세 바뀌어 버렸다. 인간의 마음이 갈대라 하지만 손바닥 뒤집듯 순식간에 바뀌는 내 마음이 가벼워 보였다.
그나저나 24층의 아파트 높이까지 어떻게 날아왔는지 신기했다. 우리나라 보호수 평균 높이가 대략 18.3m로 4층 건물 정도라고 한다. 매미도 그 정도 높이로 날아다니며 짝짓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니 40층 고층 아파트 방충망에도 붙어 있었다 한다. 큰 나무를 선호하고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분산 과정으로 추정된다는 이어진 글을 보았다. 역시 매미는 번식 본능으로 충만한 존재다.
나는 창가 방충망 쪽으로 다가갔다. 가운데 손가락 크기만 한 제법 큰 매미였다. “쐐∼애애애∼ ” 나를 찾아온 매미가 무슨 매미인지 궁금해 유튜브에서 소리를 통해 알아봤다. 말매미였다. 나는 여름 하면 “맴맴맴 매에맴” 하고 처음에는 강하다 끝소리의 여운을 주는 참매미 소리가 좋다. 뜨거운 열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여름 한 낮, 오랜 된 나무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참매미 소리는 청량감을 주어 더위를 식혀주는 매력이 있다. 요즘 참매미 소리는 마트의 수박 파는 곳에서 듣다 보니 예전과 같은 여름 정서는 찾기 어렵다.
지난 5월 경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걸어오는데 여직원이 조만간 이 길가의 나무에 매미의 유충을 많이 볼 것이라 했다. 아파트 담벼락에 따라 길가로 뻗어 있는 큰 나무들은 그림자를 만들어주어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 좋았다. 매미가 서식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여름이 시작되자 얼마 후 그 나무들에서 매미의 유충을 수도 없이 보게 되었다.
허물을 벗어두고 짝짓기를 위해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유충의 모습을 간직한 갈색의 매미 허물은 신기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이뤄낸 승리의 결산물이라 할까. 매미는 알로 태어나 1년간 나무에 있다가 다음 해에 애벌레로 부화되어 땅속으로 들어간다. 5년 정도 나무의 뿌리 수액을 빨아먹다 다시 땅속에서 나무로 기어올라 우화의 과정을 거쳐 매미가 된다. 여러 형태에 따라 나무에 있다 땅에도 있다 다시 나무에 오르는 유충을 보면 참 열심히 산다고 느껴졌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자기 복제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번식을 하고 있는 셈이기는 하지만.
며 칠 전 성형외과에 갔다. 삶에 찌들었는지, 삶의 무게가 무거웠는지 이마에 깊은 주름이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인상을 쓰고 살았는지 반성이 되면서 이제부터라도 웃으면 살자고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해보지만 한번 파이고 잡힌 주름은 좀체 펴지자 않았다. 성형외과에 가서 보톡스나 필러를 맞는 방법에 없다 했다.
유튜브의 한 스케치코미디에서 성형을 하고 난 개그우먼이 새로 태어났다며 가슴과 얼굴 성형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낸다. 덩달아 수술한 의사가 새아버지라 하며 능청을 떨며 상담하러 온 환자에게 성형을 권한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성형으로 바꾸어, 자신감이 생겨 당당하게 사는 적극적인 모습이 성형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나 역시 스스로 불만스러운 얼굴을 조금이나마 고쳐보려고 이곳을 찾았다. 주변의 다른 환자들도 보니 연예인이라기보다 나처럼 평범한 동네 이웃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매미가 성충이 될 때 허물을 벗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도 저렇게 허물을 벗어 새롭게 변신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본다. 삶에 찌든 피부와 근육이 빠지고 여기저기 신체에서 고장이 났을 때 허물에 남겨두고 매미의 성충처럼 훨씬 크고 멋지게 변신한다면 멋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황당한 상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다시 리셋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물론 성형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으니까.
매미는 짝짓기를 하고 나면 수컷은 죽고 암 껏은 나무껍질에 알을 낳고 죽는다. 무책임하게 자식만 남기고 부모는 다 죽어버린다. 인간만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을 하고 죽는 것이 매미와 다르다. 새끼들은 알아서 냉혹한 자연 속에서 알아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매미의 믿음이 있는 것인지, 새끼를 위해 부모 매미가 할 일이 없어 죽음을 택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쩌면 인간 세상이 동식물 세계보다 더 냉혹해 인간의 부모는 평생 자식을 살뜰히 챙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길바닥에 죽은 매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름의 절정에 다다른 매미들이 종족 보존의 역할을 다했나 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며 도심이나 아파트 단지에서도 매미의 울음소리는 예전만큼 들리지 않는다. 폭염으로 정신을 못 차리던 계절도 찬 바람으로 조금씩 더위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매미가 6시간 이상 걸려 우화(羽化)하는 과정을 유튜브에서 봤다. 생명의 변화는 신기했고 마지막에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인간은 본인뿐만 아니라 자식까지 걱정하느라 노화가 신기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요즘 들어 곱게 나이 드시는 어르신들이 점점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