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를 읽고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어릴 적 필독서라서 해서 읽기는 했었지만, 철부지 때 읽어서 그런지 별 감흥은 없었다. 노인이 바다에서 큰 고기를 사투 끝에 잡은 이야기만 기억난다. 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을 완독 한 것만으로 만족했었다. 서서히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나이에 다시 읽으니 전에 몰랐던 사색과 성찰로 돌아온다.
살다 보면 운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열심히 해도 잘 안 풀리고 어떤 사람은 쉽게 풀리는 것을 보면 운이라는 거대한 기운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하지 않던가. 어떤 일은 죽어라 해도 안 되고 어떤 일은 생각지 않게 술술 풀리는 것을 보면 옛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은 운이 다한 말년의 노인이 어떻게 대처하는 가를 보여주기도 하고, 한편으로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지만 무위로 끝날 수 있다는 게 인생이 아닌가를 알려주는 것 같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와 그의 배를 타고 낚시를 도왔던 어린 소년은 신념을 말한다. 산티아고가 40일 넘게 고기를 낚지 못하자 ‘살라오’ 상태에 있다며 소년의 아빠는 소년에게 그의 배를 타지 말라 한다. 살라오란 스페인어로 최악의 불운한 상태에 빠졌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빠의 말에 따라 소년은 다른 배를 탔지만 소년은 노인이 홀로 낚시를 끝내고 돌아오면 낚시 도구를 옮겨주었다. 그의 낚시 실력을 믿고 있었기에 언제가 큰 고기를 잡을 것이라 응원한다.
소년은 산티아고에게 아빠는 신념이 없다 한다. 아빠가 산티아고는 살라오 상태에 있어 같이 배를 타고 나가봤자 별 소득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운이 다한 그의 배를 타고 가다 아들이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소년은 겉으로는 아빠의 말을 따랐지만 마음속으로는 산티아고를 따랐다. 산티아고는 그런 소년에게 우리에겐 신념이 있다고 대꾸를 한다.
노인과 소년이 말한 신념은 무엇을 말할까. 다시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일종의 자신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은 젊은 시절부터 큰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았었던 무수한 경험과 경력이 있다. 늙었지만 여전히 낚시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운이 없어 석 달 가까이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다시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둘 사이에 있었다. 운이 없다고 자포자기를 하지 않고 노인은 계속해서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갔고 그때마다 소년은 그런 노인을 믿고 응원했다.
스페인 말로 바다를 ‘라 마르’ 또는 ‘엘 마르’ 라 부르는데 노인은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한다. 바다를 사랑할 때 쓰는 스페인 말로, 그는 바다를 여성으로 취급해 큰 은혜를 베푸는 곳으로 생각한다. 바다가 가끔 사납거나 나쁜 짓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바다를 사랑한다. ‘엘 마르’ 는 바다를 남성으로 생각해 경쟁상대, 적으로까지 생각해서 표현하는 말이다.
노인의 인생은 바다가 전부이기에 그는 자신의 인생도 바다처럼 ‘라 마르’ 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바다가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인생도 바다처럼 은혜를 베풀고 고난이 생기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살지 않았나 싶다. 어부로 선원으로 무수히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며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말년의 그는 가난하다.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고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생활을 하지만 그는 불평불만이 없다. 자신의 처지와 인생을 한탄하지도 않는다.
산티아고가 85일 만에 만난 물고기는 여태껏 잡았던 수많은 물고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크기의 커다란 마알린이었다. 이틀 동안 낚싯줄을 놓지 않고 마알린을 잡기 위해 온갖 고통과 피로, 배고픔을 이겨내고 배 옆에 마알린을 매달고 귀항을 한다. 엄청난 노력으로 이룬 큰 성과이지만 좋은 일도 잠시. 쇠 작살로 마알린을 잡다가 흘러나온 피는 구름처럼 바닷속으로 퍼져나갔다. 그 피는 상어를 불러들였다. 상어 떼의 출현으로 노인은 다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뺏기지 않으려는 자와 빼앗으려 하는 자의 치열한 공격과 방어가 있었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상어들은 가차 없이 뜯어먹는 바람에 마알린은 뼈만 남았다.
노인은 정말 살라오에 빠졌는지 모른다. 85일 만에 만난 물고기를 잡았을 때만 해도 드디어 운이 돌아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도 잠시 상어 떼에게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돌아오는 배에서 그는 한탄이나 원망도 없다. 그는 무거운 짐이 없어 배가 가볍게 잘 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라 한다. 사투를 벌이며 어렵게 잡은 마알린을 바로 앞에서 상어에게 빼앗겼음에도 그는 오히려 담담하다.
노인은 화가 나고 좌절할 만도 하지만,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희망을 갖지 않은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는 신념 때문인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평소처럼 집으로 와 쉰다. 많은 어부들이 그의 뱃전에 묶여 있는 커다란 뼈를 구경해도 노인은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인은 결국 소년에게 운이 다해서 같이 낚시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소년은 운은 자신이 갖고 가겠다며 노인과 다시 낚시하자고 한다.
간혹 은퇴를 앞둔 선배들과 노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다 보면 속으로 나도 모르게 ‘이 나이에 굳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들고 나온다. 특히나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이나 운동,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반사적으로 반응을 한다. 이 책은 안주하려는 나에게 뒤통수를 한 대 때린 것 같다. 희망이나 신념은 젊은 시절, 갑옷처럼 전쟁의 삶을 사는데 필수적이었지만 지금은 무거워 쉽게 아무 데나 내려놓은 느낌이다.
나이 들면서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뒷전으로 밀려나 점차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신체적 노화로 몸이 고장 나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생겨나는 정신적인 노화가 더 무서운 것 같다. 아직도 살날이 까마득한데 정신적으로 노인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죄악일 수 있다는 산티아고의 생각이 나의 가슴에 썰물처럼 와닿는다. 메이저리거 선수인 디마리오가 발뒤꿈치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의지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던 것을 생각하며 고기를 잡았던 산티아고처럼, 나도 그런 정신적 모델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