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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이 삶을 만든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by 허정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인이 소개해 준 소설 ‘이보다 사소한 것’을 읽은 후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세속화된 수녀원의 반인권적인 활동에 주인공 펄롱은 예수님의 인간 사랑으로 대항한다. 소시민으로 사는 펄롱이 수녀원을 개혁하려는 사회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다들 모른 척하라고 하는 것을 거부할 뿐이다. 자신이 받았던 작지 않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수녀원에서 미혼모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갈 뿐이다.

이 소설은 단편 소설로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 세 번 읽을 때 작가가 표현하는 섬세한 감정과 암시가 눈에 들어온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주인공이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며 살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미혼모였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수녀원 세탁소의 여인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마침내 펄롱은 해야 할 것 같은데 감히 용기가 안 날 때 드는 불안과 걱정을, 그리고 마침내 용기 있게 실행함에서 오는 뿌듯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소설은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암시만 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더 먹먹한 기분이 든다.



펄렁은 사생아로 태어났다. 펄롱의 어머니는 윌슨 부인의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다 펄롱을 낳았다. 다행히 윌슨 부인은 그들을 내치지 않고 자기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시 마을에서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가 있었다.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하고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는 것으로, 타락한 여성을 수용하기 위한 곳이다. 이곳은 성매매 여성, 미혼모,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 남성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이곳에 오면 죽도록 일을 하고 그녀들이 낳은 자식은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


펄롱이 12살 때 어머니가 뇌출혈로 돌아가셨지만, 윌슨 부인의 경제적 지원과 따뜻한 보살핌으로 그는 건실하게 성장한다. 펄롱은 아일린과 결혼해 다섯 명의 딸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산다. 펄롱은 성실했고 일머리가 있어 석탄 배달 회사의 관리자로 일을 한다. 평화롭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지만, 과거 고달팠던 삶 속에서 모든 걸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에 펄롱은 긴장될 때가 많다.


펄롱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석탄을 배달하러 수녀원에 갔다. 잘 다듬어진 정원을 지나 작은 성당으로 가는데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이 광택제 통을 들고 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발도 신지 않았고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펄롱을 발견한 그녀들은 놀랐다. 그녀들 중 한 사람이 펄롱에게 강가까지 데려달라고 한다. 거기 가서 빠져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집으로 데려가주면 죽을 때까지 일을 하겠으니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도 한다. 펄롱은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때마침 나타난 수녀 덕분에 그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펄롱은 아내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했다. 아일린은 현실적이었다. 아일린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모른 척하라고 한다. 우리는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 우리 딸들이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펄롱은 과거 윌슨 부인이 없었으면 어머니가 있었을 곳은 그 세탁소였고, 자신은 어디로 입양을 가 있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말한 것처럼 쉽게 모른 척하고 그들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펄롱은 수녀원으로 향했다. 마치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배달하기 위해 수녀원의 석탄 창고 문을 여는 순간 어린 여자가 있었다. 대화를 해보니 그녀는 미혼모였고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를 누군가 데려갔다 한다. 그녀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어 했다. 펄롱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수녀원으로 데리고 갔다. 수녀원 원장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난 것을 의식했는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원장 수녀는 다른 수녀에게 그녀가 오늘은 푹 쉬도록 하고 먹을 것을 양껏 주라 했다.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딸 둘이 수녀원이 운영하는 여학교에 다니고 있고, 생활을 잘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아울러 다른 딸들도 이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을 암시한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을 외부에 알리지 않도록 입단속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50파운드를 크리스마스카드와 함께 펄롱에게 선물한다. 펄롱이 돌아가려 할 때 어린 미혼모는 식탁 위에 아무것도 놓인 것 없이 앉아 있었다. 펄롱은 그녀의 이름이 세라라는 것을 알았다. 펄롱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이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펄롱은 직원들과 케호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케호 부인은 계산을 끝내고 가려는 펄롱을 붙잡는다.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수녀원과 충돌을 일으키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고 교단은 다 한통속이라 충고한다. 펄롱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펄롱은 미시즈 케호의 충고와 달리 수녀원으로 가 세라를 찾아 데리고 나온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나온 것처럼.

펄롱은 세라를 데리고 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가슴속엔 설렘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세라가 딸이 아님을 알았고 대번에 세탁소에 있어야 할 여자임을 알자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열지 말아야 할 판도자 상자를 연 사람을 대하듯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했다. 펄롱은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자신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119)라고 자문했다.




50년 넘게 가톨릭 신앙인으로 살았지만 정작 펄롱과 같이 사랑을 실천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면 부끄럽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안위와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매달렸지, 정작 예수님이 보여준 이웃 사랑을 흉내 내려하지 않았다. 신으로 예수님을 찾았지 인간으로 행동하는 예수님을 찾지 않았다. 나이 들어 내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나의 이런 기복적 신앙이 유치하게 보였다. 요즘 들어 인간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사랑하고 그가 보여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자가 되었으면 했다. 이 책은 다시 한번 나를 일깨워 주었다.


책 제목처럼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합쳐져 하나의 삶이 만들어진다고 할 때, 일상을 사는 삶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따스함, 감사함, 친절함은 절대 사소하지 않은 것 같다. 윌슨 부인은 펄롱을 자식처럼 대했지만 그렇다고 부모처럼 애정을 가지고 대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사소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스며들어 펄롱을 따뜻한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사소한 말과 행동, 마음씨가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사랑으로 자라서 실천할 수 있음을 펄롱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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