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빛과 실을 읽고
글을 쓴 지 5년이 되었지만 언제나 부족하다. 좋은 작품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표현을 하지?’라는 감탄이 절로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초라한 내 글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저런 멋진 글들이 나올까. 어떻게 하면 내 글도 감동으로 여운이 남을까. 따라가지 못해 쳐다만 볼 뿐, 늘 궁금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는 여러 배트맨 영화 중 최고다. 훌륭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는 작품성이나 흥행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조커 역을 했던 히스 레저다. 조커라는 악당이 있다면 실제 저런 모습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구부정한 걸음과 웅얼거리는 말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총을 쏘는 모습이 섬뜩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말과 행동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한때 메서드 연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특정 배역에 자기 자신을 그대로 몰입하는 연기법이라 한다. 히스 레저는 너무 몰입해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약물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대표적인 메서드 연기자다. ‘나의 왼발’을 촬영할 당시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휠체어로만 움직이는 등 뇌성마비 역을 위해 똑같은 체험을 했다. 그의 이런 연기를 보고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극한 몰입으로 인물이 느끼는 절망감과 답답함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생기는 에너지를 영화 속에 보여 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진짜라고 느끼게 했다.”
최근 한강의 ‘빛과 실’이라는 책을 읽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녀가 북쪽으로 난 조그마한 마당에 정원을 꾸민 담백한 일상과 여러 편의 시가 담겨 있다. 서두에 그녀가 여덟 살 때 썼던 시를 소개하며, 시의 중심어인 사랑과 금실을 현재의 작품과 관통해 설명한다. 그녀가 쓴 소설에 대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배경, 과정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표현했다. 특히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처럼 학살이라는 아픈 역사에 대해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녀도 소설의 주인공들이 겪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온몸으로 체험하려 했다는 것이다. 구덩이 안쪽을 느끼려고 책상 아래 모로 누웠었고, 해 진 후 녹음 아래 그늘이 캄캄할 때 시체들이 썩어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등산로를 벗어나 숲 속으로 혼자 더 깊이 들어갔었다. 살갗에서 눈이 녹는 감각을 기억하려고 손이 빳빳해질 때까지 눈을 쥐었다 폈다 했다. 산자보다 죽은 자들을 가깝게 느끼려 했고, 소설을 쓰는 중에는 눈물로 세수했다고 한다.
글을 쓰는 행위도 현실의 삶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작가도 메서드 연기자처럼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이 온다’을 읽을 때 동호의 어머니가 자식을 잃은 힘겨운 일상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었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먹먹해 다 읽어도 쉽게 책을 덮지 못했다. 작가의 극한 몰입으로 고통과 아픔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생기는 에너지를 소설 속에 불어넣어 몰입할 수 있었다. 그녀의 감정과 감각이 전류처럼 소설 곳곳에 찌릿한 자극이 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너무 조용하고 차분해서 툭 치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연약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코트와 나’라는 시가 이 책 중간에 있었다. 20년 동안 입은 코트와 관계를 정감이 가게 표현했다. 20년 입은 코트는 작가를 닮아간다. 서로 안고 업고 지내며 동고동락한 시간을 보내는 재미난 시다. 코트가 그녀처럼 느껴졌다.
갸녀린 외모와 달리 내적인 힘이 강한 그녀는 소설을 쓸 때마다 자신에게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 속으로 들어가 그 질문을 견디며 소설을 쓴다고 고백했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찾아가는 내면의 치열한 싸움이라고 할까. 이 책의 제목처럼 그녀의 글은 실이 되어 생명의 빛과 전류로 흘러 사람들의 가슴을 연결해 주었다.
가끔 소설은 어떻게 쓰나 궁금했는데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문제의식과 답을 찾아가기 위해 구성하고 등장인물을 창조해 성격과 행동, 말을 만들어서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냐.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고 메소드 연기가 있었다니.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그녀가 7년 동안이나 쓴 ‘작별하지 않는다’ 라는 소설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