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방송작가, SNS 신입마케터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SNS 디지털마케팅 전문가 과정]의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루4시간 X 총 3일 간의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집단상담?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건가?
20년 넘게 프리랜서로만 일해 온 나에게는 생소한 네 글자 였기에, 검색을 해봤다.
집단 상담 (集團相談)
비슷한 문제에 처해 있는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심리가 안정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언 등을 하는 일.
...
오! 좋은데?
강의실에는 네 명씩 마주보는 모둠 대형으로 총 네 모둠의 자리가 세팅되어 있었다.
첫날이니까 일찌감치 도착해서 내가 좋아하는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수업 들을 때는 대체로 앞자리를 사수하는 편... 셀프 졸음방지, 딴짓방지 차원에서)
그 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누구지? 아는 사람 하나없는 이 곳에서 나에게 말을 걸 사람이 없는데...
(나와 3:3 면접을 함께 본 나머지 두 명의 지원자 역시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어? 방금 여기 앞에 카페 계시다 오셨죠? 텀블러가 예뻐서 기억해요."
스마일, 데이지에 미친자인 나의 파란색 '위글위글' 텀블러가 오늘도 존재감을 발휘했군.
그녀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내 앞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이름표와 워크북, 보틀 텀블러와 필기도구 세트가 선물로 마련되어 있었다.
직업상담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자기소개와 함께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워크북에는 경력보유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후에 재취업 할 수 있는
수십개의 직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술만 마시면 집에 가서 욕실바닥 청소를 하는 아주 바람직(!)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는
치위생사 동생을 위한 맞춤직업! 주변환경정리(청소)전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이
뒤늦게 대학강의까지 챙겨들으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고양이 열 네 마리를 키우며 웹툰을 그리는 후배가 공부하고 있다는 반려동물장의사
<나혼자 산다>에서 박나래가 도전했던 도배공
학원강사 출신 언니가 만일을 대비해 독서지도사 자격증과 함께 따놓은 직업상담사
그리고 반려견 육아 3개월차에 접어든 내가 도전해보려고 했던 반려동물 미용사까지...
나,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이미 한 차례 변화의 바람은 일고 있었다.
다행이 그 직업목록 중에는 내가 해볼만한 직업이 두 개 있었다.
바로, <미디어콘텐츠 제작자>와 <소셜미디어전문가(SNS마케터)>
담당자가 나눠준 구직신청서에 취업희망직업을 적어서 제출했다.
각자의 책상위에 올려진 명패에는 이름 아래 '별칭' 란이 있었다.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닉네임을 적어달라는 것.
(그렇다. 그거슨 자기소개를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별칭 발표와 함께 자기소개 타임이 시작되었다.
방송작가, 블로거, 독립출판사 사장님, 방송국 세트디자이너, 전직 항공사 승무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학력', '고숙련'의 경력단절(X), 경력보유여성들이 이곳에 모였다.
'SNS 디지털마케팅' 분야에서 취업, 창업의 벽을 뽀갤 전직 현직 정예요원들!!
본인의 영어이름을 별칭으로 적은 분들도 많았고(역시 글로벌시대),
학창시절 별명이나 귀여운 애칭... 스벅의 '콜마이네임'을 인용해 적은 분도 있었다.
앞 분들의 자기소개를 경청하다보니,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모두들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오신 것 같은데, 저는 이곳에서 동종업계 분을 만났네요."
나의 첫 마디에 가뜩이나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망울들이 더욱 크고 반짝반짝해졌다.
"저는 20년 동안 방송 예능작가로 일했습니다"
우연인가... 인연인가...
자리가 내 앞자리여서 자기소개도 딱 내 앞 순서었던...
내 텀블러를 알아보면서 환하게 웃었던 그녀는 나와 같은 '방송작가'였던 것이다.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13년을 일했다고...
(다시 나의 소개로 돌아가서)
"저의 별칭은 '작가언니'입니다. 후배들도 지인들도 저를 '작가언니'라고 많이 부르거든요.
제가 가진 콘텐츠 기획, 제작 능력에 SNS 디지털 마케팅 기술을 더해 훨씬 힘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면접 때 준비했던 1분 자기소개를 우라까이(*방송계 은어, 적당히 바꿔서 다른 것처럼 만드는 것을 뜻함) 한
자기소개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