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대한 생각
1. 이름이 뭔가요
“제 이름은 ~입니다.”
“이름이 뭐예요?”
어떤 관계라도 시작은 늘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이름을 알면 그 사람을 아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이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서 한 발짝 나가게 되는 계기는 서로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김춘수 시인의 그 유명한 시 ‘꽃’에서도 그렇다. 흔하디 흔한 대상이던 꽃에 이름을 붙이고 불러줌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의미 있는 대상이 되는 장면을 두고 그 표현의 깊이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란 그렇게나 중요하다.
2. 왜 이름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한 때, 이름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이르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서로의 경계를 넘어 일정한 거리 내에 닿게 된다는 의미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의 어원은 ‘이르다’가 아니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세종대왕께서도 “니르고져 홇배이셔도”라고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적어두셨다. 즉, 이르다는 말의 원형은 ‘니르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의 어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어로 현대의 ‘일컫다’의 어원으로도 알려진 ‘잃다’라고 한다. 이것이 이름을 짓는다는 뜻을 가진 어원이다. 현대 한국어 화자로서는 참 오묘하게 느껴진다.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됨으로써 서로의 정체성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관계를 맺고 지내다 일정한 선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서로를 잃게 되기도 한다. 서로에게 이르기도, 때로는 잃기도 하는 상황에 따라 그의 이름은 다르게 느껴진다. 신선하고 멋진 이름, 그것이 변해 짜증 나거나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한 이름이 되기도 한다. 이름은 변함없고 의미도 같은데 대상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3. 세상 최초의 이름은 무엇일까
나는 돼지를 ‘돼지’라 이름 지은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다. 왜 저 동물을 보고 ‘돼지’라는 생각이 든 것일까? 모기, 쥐, 개, 말, 소 모두 마찬가지다. 그 동물을 보고 “저것은 개야.” 또는 “저건 말이야.”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다른 것과 구별할 필요가 있기에 이름을 지어냈을 텐데, 처음으로 생각해 낸 사람은 어떤 이유로 그런 것들을 만들어 붙인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대답해 줄 이는 아무도 없는 이 물음 때문에 나는 평생 궁금할 것이고, 그것이 나의 창작에 대한 장작이 되겠지.
4. 이름답게
전에 쓴 글에서 ‘아름답다’는 말이 ‘앎’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故 서정범 교수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아는 것이 익숙하기에 마음에 안정을 주고, 이것이 좋다는 의미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매력적인 생각이라고 느꼈다.
나는 이름답게라는 말을 새로 이야기하고 싶다. 어떤 어감의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좀 더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고 싶다. 살기 좋고 마음이 따뜻한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이름다운 세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