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____ 못 버린 물건들
첫 장, 은희경 작가 소개를 보면서
작가의 책을 참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나는 건 마이너리그 뿐.
다른 책들의 제목이 생소하다.
작가가 등단한게 1995년 내가 군대에서 참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때이니
나도 작가도 오래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가의 책이 기억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해본다.
1990년대 후반 인턴을 시작으로 2000년 초반 취직을 하고
그 시간 동안 회사를 4번 옮겼고 결혼을 했고 두 딸의 아빠가 되고
관리자가 되고 아이들은 다 컸다. (뭐 아직 커가는 중이고 언제 어른이 될지는 모른다)
작가의 책을 기억하기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머리가 나쁜 것도 기억력이 퇴보하지는 않았어. 그냥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거야.
고등학교 때 죽어라 손에 쥐고 놓지 않은
성문종합영어, 수학의 정석, 한샘국어가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또 못 버린 물건들
작가의 물건들은 작가가 쓴 소설에서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예전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오랜된 물건들에서 한권의 책을 엮을 만큼
작가의 기억과 이야기를 연결해 가는 과정에서 새삼 내가 끄적이고 있는 글이 초라해진다.
사물을 관찰하고 기억해 내고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특별한 능력
처음에는 이런 소재로 산문집을 진짜 오랜만에 보는 하드커버에
빳빳한 종이, 고작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고
작가의 브랜드 파워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산문을 쓸 수 있어다고 폄훼한 내 자신을 반성한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내면을 남에게 내보이고
또 설득하는 일이라고 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이 글귀에서 난 글을 쓰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오늘 다시 알게되었다.
난 미니멀리즘 뭐 이런거 선호한다.
그리고 충동구매로 벌어진 일에 대해 무책임하고
또 회사 비품은 언제라도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의 물건은 내 구매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잘 버리는 편이다.
인간도 그렇다.
지금 이 나이에 주변의 인간들 정리도 쉽게 한다.
그럼에도
또 못 버린 인간들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고
그간의 세월 동안 수없이 엮인 일들로 부득이 하게 못 버린 인간들도 있지만
인생에서 버렸던 인간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수거되거나 재활용 되거나
개선된 모습으로 만나기도 한다.
물건은 재활용품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그 형태를 알 수 없을 것이고
매립되었다면 내 생에 영영 이별인 건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산문이라 가볍게 여기고
주말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아침 8시 좀 지난 시간,
첫 째가 8시까지 가는 학원 앞에 내려주고
스타벅스에 앉아 있다.
이 시간은 유일하게 이 더운 여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고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말이라 8시에 오픈하는 스타벅스는 아주 시원하고
아직 사람들이 없어 잔잔한 음악만 들릴 뿐이다.
10시가 다가오면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음악은 더 커질 것이고
나는 아마도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쓰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음악과 함께 읽어도 좋다.
유튜브에서 책읽을 때 좋은 음악을 검색하고
relaxing melody 컨셉의 음악을 들으며 읽고 있다.
선물 받은 책이다.
이런 선물은 참 반갑고 고맙다.
왜냐고?
선물의 유용함은 받는 상대방이 사기 애매해서 주저하거나 아주 비싸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면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이 책은 전자에 속한다.
호기심은 있었겠지만 내 돈으로 구매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매하는 책은 꼭 어려워 보여야 하고 뭔가 있어 보여야 하고
또 그 책으로 무언가의 결과를 내기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으로는 선뜻 책과 카드를 건내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선물해 주신 분이
이 책이 내가 선뜻 구매하지 않을 것 같아서 주신 의미였을지 아니면 내가 지저분해 쓸데없는 물건들을
내 주변에 쌓아놓고 살 것 같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미니멀리즘으로 살아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내 주변에 무엇이 오랜 시간 함께 했는지 사색해 보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포스트잇을 끼지 않은 아마도 2024년의 첫 책.
책을 읽으면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본 나의 시각을 조금이라도 수정해야겠다.
게으른게 아니라
그들에게 물건이란 그냥 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오브제라는 것을.
쓸모는 없어도
그 물건이 누구인지 모를 내 안의 다른 나를 발견하고 살아나게 하고
거기 깃든 나의 시간
물건에는 그것을 살 때의 나, 그것을 쓸때의 나, 그리고 그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으며 그 시간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p153~154)
나에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 무얼까?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져서 3대가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은 있을까?
영화에서 가끔 보던 프로포즈할 때 우리 할머니가, 우리 엄마의 반지야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값어치가 많이 나가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 개러지라는 공간이 있어 큰 물건도 대를 이을 수 있지만
우리같이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공간을 최대한 효율성 있게 사용해야 하는 곳에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금은 우리 손에 없지만 지금은 없어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 토이 저러스에서
비행기 시간 임박해 사서 그 무거운걸 택시에 우겨 넣고 카트에 실지도 못해
질질 끌고 가져온 희귀했던 나무로 된 주방놀이. 아이들 방 중앙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낸 그 물건.
그 정도가 생각나는데
그 주방놀이가 우리 아이들을 거쳐 또 그들의 아이들로 갔었으면 그래서
우리는 그 물건을 보며 거기 깃든 시간들을 추억해 보고 가족이라는 의미를 매일 되새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는 우리의 아파트 공간은 이런 추억을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아 씁쓸하다.
작가는 나와는 동시대를 살아와 삶의 궤적에 나타난 모습들이 공감이 되었으나
그래도 나보다는 좀 나이가 있다 보니 나의 부모님 세대와 나의 세대 그 어디인가에
걸쳐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같은 사치품인 몽블랑 펜을 가지고 있고
나와 같이 술을 좋아하고 그 술잔과 술에 대한 의미를 함께 사색할 수 있어 좋았고
나의 와이프님의 습관 그리고 자전거를 대하는 태도가 어쩜 이리 똑 같을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작가로부터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몇 가지 책을 읽으면 메모해 본 내용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5. 친구에게 빌려주는 안 되는 물건 중, 어린이는 아직 쓸데없는 정보가 학습되지 않았고 편견을 가질 만한 시간을 살지도 않았으므로 수많은 것을 상상해낼 수 있는 능력자이다. 어린이는 정의로운 존재이므로 뜻밖에 죄의식을 많이 느낀다. 어른과 다른 점이다. 어른들은 착한 어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겁을 준다.
6. 다음 중 나의 연필이 아닌 것은? 중: 나는 세상 모든 소설가를 존경한다. 다들 너무 잘 쓰고 훌륭하다. 현재 내가 끼적이고 있는 글에 비하면. 글 쓰는 속도가 느리다. 다시 볼 때 깨끗한 필체가 더 좋다, 보기에 좋아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글을 쓰는게 느려진다. 컴퓨터에 치는 건 상대적으로 빠르다. 그래서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글 쓰기는 컴퓨터 자판이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난 같이 생각의 변덕이 심해 수정사항이 많은 사람에게 연필이 달린 지우개는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