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없이 문 앞에 서 본 아침

나이 들어간다는 건 서두르지 않는 연습이다.

by 김성자예쁜

요즘은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이 다 들어온다.

전화번호도, 카드도, 주민등록증도, 심지어 현관문 열쇠까지 핸드폰 속에 있다.

지갑도 수첩도 필요 없는 세상이다.

그만큼 핸드폰이 없으면, 삶도 잠시 멈춘 느낌이다.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노트에 적어 다녔다.

가족 번호쯤은 외우고 살았다.

지금은 가족조차 ‘1번, 2번’ 메모리에 저장된 세상이다.

편리함은 커졌지만, 기억은 점점 줄어든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바쁜 아침, 출근해서 보니 핸드폰이 없다.

괜히 마음이 먼저 불안해진다.

모든 일이 제대로 시작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결국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 앞에서 다시 멈춰 섰다.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

카드도 핸드폰 속에 있다.

오늘따라 경비 아저씨도 보이지 않는다.

현관 앞에 서서 그제야 깨달았다.

아침부터 내가 꽤나 덤벙거렸다는 걸.


그때,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문이 열리는 그 짧은 순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얼른 문 사이로 들어오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추운 날씨에 한참을 서 있어야 했을지도 모를 시간을

그 할머니 덕분에 무사히 건넜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며칠 전 토요일 새벽, 목욕탕에 가면서도 핸드폰을 두고 나온 적이 있다.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 꽁꽁 언 날씨 속에서

현관 앞을 서성였던 시간.

그때도 다짐했다.

다음부터는 꼭 챙기자고, 조금 더 신중하자고.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다.

‘이번엔 괜찮겠지’ 하다가 또 이런 일이 생겼다.

비밀번호라도 외워둘 걸 싶지만,

요즘은 외운다는 일조차 쉽지 않다.

결국 우리는 기억 대신 핸드폰을 믿고 산다.

그리고 그 핸드폰이 없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현관 앞에서 가만히 서 있으니

이 일이 단순한 해프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이런 순간은 더 잦아질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실수해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뛰면 됐고, 급하면 서두르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속도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문을 나설 때 한 번 더 확인하는 일,

급하지 않은 일 앞에서 숨을 고르는 일,

‘괜찮겠지’ 대신 ‘잠깐만’을 떠올리는 마음.

이런 것들이 나이 들어가며 꼭 필요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요즘, 이제는

모든 걸 다 하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그리지 않아도 될 걱정은 내려놓고,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은 삼키고,

조금 느려도 안전한 쪽을 택하려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어쩌면 그런 연습일 것이다.

빨리 넘기지 않고 한 줄에서 멈추는 일.

그 멈춤이,

삶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


현관 앞에서 배운 그 아침 이후로

나는 문을 나설 때 마음부터 챙기고 있다.

핸드폰보다 먼저,

나의 차분함을.


서두르지 않고,

요란하지 않게,

바른 마음으로.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조심스럽게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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