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기준과 삶의 질

할머니의 삶에도 기준이 필요하다

by 김성자예쁜

다양한 나이의 모임에서 일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카페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요즘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말이 나왔다.

ㆍ30평 이상의 자기 소유 아파트,

2.000cc 이상의 자동차,

현금 자산 1억 원 이상,

월 500만 원 이상의 소득,

ㆍ1년에 한 번쯤은 외국 여행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삶.

이것이 우리나라 중산층의 조건이란다.


말을 옮길수록 테이블 위의 공기는 조금씩 무거워졌다.

과연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정말 이것만 되면, 노후는 아무 걱정 없이 보장되는 걸까.


월 500만 원 이상의 소득.

직장에 다니는 동안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퇴직 이후엔?

그래서 연금 이야기가 나오고,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최소한의 벌이는 해야 한다는 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더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나이.

어쩌면 현역으로 살아 있는 시간이 곧 건강을 지키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날 집에 와서 우연히 펼친 책 한 권.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속에서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으로 알려진

퐁피두 전 대통령이 말한 ‘삶의 질’이었다.


외국어 하나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

ㆍ관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하나,

다룰 줄 아는 악기 한 가지

ㆍ남들과 다른 나만의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하나,

ㆍ공분에 의연히 참여하는 자세,

ㆍ꾸준한 봉사 활동.


읽는 순간,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이건 숫자가 아니라 생활의 결에 대한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우리나라 기준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집, 소득, 자산.

이 나이가 되니 그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스포츠 하나, 악기 하나, 봉사 활동.

이건 ‘선택’이 아니라 기본 체력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안다는 것과 산다는 것의 간극이다.

시간을 핑계로, 몸을 핑계로, 자주 미뤄둔다.


일곱 살 손녀 지온이와 한 약속이 있다.

“지온아, 할머니는 영어를 잘 못하니까

내가 너 영어 학원은 꾸준히 보내줄게.

나중에 외국 여행 갈 때,

할머니는 돈 낼 테니까

너는 영어 하면서 같이 다니자.”


영어 학원을 안 다닌다고 말하던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좋아 할머니.”

그 약속을 지키려면

나는 여전히 돈을 벌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땐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를 수 있는 할머니로 남고 싶다.



모든 기준을 다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아우트라인 정도는 그어두는 삶.

그건 욕심이 아니라 노년을 위한 보험일지도 모른다.

적금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 더 시급한 건

근력의 적금, 움직임의 적금이다.

손녀의 힘을 빌려 살아가려면

할머니의 무게는

돈과 체력, 그리고 태도로 지탱되어야 한다.


중산층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결국

내 노년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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