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을 격려하면서도 평범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다.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감정의 결을 가지고 태어나는지를.
그리고 그 결을 그대로 키워낸다는 게
얼마나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일인지를.
내 아이는 감정이 예민한 편이다.
소리에 예민하고, 눈빛에 반응하고,
말보다 더 앞서서 공기를 먼저 읽는 아이.
처음엔 ‘조금 예민한 아이인가 보다’ 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 결이 더 또렷해진다.
더 잘 느끼고, 더 많이 상상하고, 더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
나는 그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동시에 불안하다.
한편으론 이런 아이의 감수성을 지켜주고 싶고,
한편으론 그 감정이 너무 짙어서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고 “무던해져라, 무뎌져라”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그냥 좀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스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요즘 자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AI가 사람의 감정을 분석하고,
"당신은 지금 슬퍼 보이네요"라고 말하는 시대.
감정조차 ‘데이터’로 분해되는 이 시대에
진짜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할 줄 아는 아이는,
오히려 더 귀한 사람이 아닐까?
그 아이는 말할 수 있을 거다.
기계가 못 느끼는 것들을.
기계가 못 알아채는 떨림을.
기계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온도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보가 많아진 만큼, 감정이 지워지는 시대기도 하다.
빠르게, 논리적으로, 효율적으로.
그 틈바구니에서 나의 아이는 어쩌면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예민함은 약함이 아니라,
섬세함의 다른 말이고,
감정이 많은 건 취약점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가장 큰 강점이라는 걸
나부터 먼저 기억하려 한다.
물론 나는 여전히 양가감정을 품고 있다.
무난하고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과,
이 깊은 감정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응원 사이에서
나는 매일 균형을 잡고 있다.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아이를 키우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미래 교육’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