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친정엄마도 바쁘다..

msmg

by 올리

이제 미역과 다시마, 들깻가루.. 그리고 이심인지 유심인지(휴대폰용)를 사면 준비는 얼추 끝나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곧 출산하게 되는 딸 산관하러 떠나는 트렁크 속에 넣을 물건들 말이다.


이번 겨울은 참 바쁘고 힘들었다.

나라도 '드럽게' 혼란스러워 뉴스와 유튜브를 보면서 정말 욕 많이 했다. 12월 초에 일으킨 사건이 봄이 다 되도록 시간을 끈다. 아니 그런데, 광화문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뉴스로까지 보게 되니 많이 힘들다.


그 와중에 나는 양 눈의 백내장 수술을 하고, 미국 갈 준비물을 살살 챙기면서 겨울을 났다.

눈 수술을 한다고 19년 동안 빠지지 않고 해 오던 수영장 다니기까지 멈추고 눈 새로 만들기에 주력했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끝이 아니었다. 눈에 맞는 돋보기 찾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망막정맥 폐쇄증으로 글씨가 깨지고 잘 안보이는 왼쪽 눈 상태는 여전한데, 양눈에 난시도 심해서 안과 처방전으로 만든 돋보기 조차 너무 불편했다. 지인에게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을 얻기도 하고, 남대문 시장 아무 데서나 파는 그런 돋보기도 사서 이렇게 저렇게 상황에 따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노력 중이다.

'미국 가기 전에 잘 맞는 돋보기를 만나야 하는데.. '


눈이 그렇다고 미국에 갈 준비는 미룰 수가 없었다. 뭘 배워도, 누굴 만나도, 쇼핑을 해도 다 미국 갈 준비의 일환!


1월 초부터 동네 요리 학원을 다녔다.

퇴직 후 백수가 된 '특권(!!)'으로 발급받은 '국민내일배움카드'를 드디어 사용하게 된 것. 안 그래도 요리는 좀 배우고 싶던 차에, 찌개와 전골 만들기 10회짜리 강좌가 눈에 띄어 미국 가기 전에 후딱 배워보겠다는 심정으로 신청하였다. 나의 눈 수술 후 안정기가 끝나자 마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출국 전 날까지 강의를 들을 것이다. 산모는 물론, 아빠가 되는 사위까지 잘 먹이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2월에는 '산전산후관리사' 교육을 받았다. 3주간 매일 4시간씩 총 60시간을 지난 금요일까지 교육받았다.

매일 오후 내내 교육을 받느라 붙들리니 오전 시간이 어찌나 바쁘고 분주하던지. 고단한 매일이었다.

내가 친정엄마로서 미국에 산관 하러 출장(ㅎㅎ)을 가는 이 상황을 걱정하던 중에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더욱이 신생아 산모 관리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도 얻었으니 좋다.


이 신생아 산모 관리사 교육은 사실 특별한 내용을 배운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가정수업과 교련수업 시간을 되짚어보는 기분이었다. 아, 약간의 생물 시간 내용도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때 배웠던 내용을 다시 훑으니 어렵지도 않고 또 절실한 마음으로 들으니 어찌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느낌이던지.. 참 좋았다.


더욱이 내가 아이를 낳았던 그때 당시는 뭐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후루룩 지나가 버려, 내가 친정엄마가 되었다 해도 경험이 일천했음은 사실이다. 그렇게 얻었던 나의 딸이 이제 어른이 되어, 나에게 '친정엄마'라는 명예로운 신분을 만들어줌과 동시에 '산후 관리'라는 엄청난 역할을 부여해 주었으니,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은 당연한 상황.

지인들에게 이런 나의 '심정'을 이야기하면, '아니, 그걸 뭘 그렇게 무서워해? 닥치면 하지. 엄청 고단하긴 하겠네.' 그런다. 그러나 나는 고단할 일이 걱정이 아니라 그 집에 어른 전담자로서 존재하는 그 상황이 정말 무서웠다.


나는 출산 후 친정집에서 친정엄마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어찌 그 모든 것을 다 잘하셨는지 놀라웁지만 그때의 내 친정엄마는 엄청난 경험의 보유자이셨다. 이미 네 아이를 낳아 키우셨고, 당시 이미 손주도 3명이나 얻으셨던 상태.


나는 출근길 전철이 너무 복잡해서 출산 예정일에서 보름이나 앞두고 미리 휴가에 들어갔다.

당시는 출산 휴가가 한 달에서 두 달로 변경되었지만 자리를 잡지는 못했던 시절. 동료 눈치를 엄청 보던 시절이었다. 그 살뜰한 두 달 중에 미리 출산 휴가를 시작한 나는 출산 한 달 남짓 지난 후 다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때, 직장 복귀를 걱정 했던 기억은 지금도 나는데, 핏덩이 같았던 내 아기를 돌보았던 일은 아삼삼하다. 친정엄마께 다 의지하고 맡겼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교육 과정에서 '신생아 목욕시키기'와 '산모를 위한 마사지' 실습 시간은 참 좋았다.

나와 함께 교육을 받은 분들 중에는 나처럼 딸이나 며느리의 출산 후 관리에 도움이 될까 하여 오신 분들도 꽤 있었다. 시어머니가 되는 분들은 '어디 며느리가 나한테 맡기겠나' 하는 이야기로 서로 웃곤 하였지만, 나 같은 친정엄마들은 '딸에게 꼭 해주어야겠네.' 하며 기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탯줄을 달고 세상 구경 나온 새빨간 아기,

죽을 듯한 고통으로 출산을 감행할 나의 딸,

세상 처음 겪는 일들로 당황해 할 사위까지..


수료증을 사진 찍어 미국 딸아이에게 보냈다.

'네 친정엄마, 이렇게 공부하고 간다, 잘 해보자 우리...'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지난 겨울 내내 바빴던 나,

올 봄은 신생아 산모 관리사 친정엄마로서 미국에서 꽃을 피울 듯하다. 으하하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승환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