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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이 당첨되면,

미국일기_할머니 되는 나날

by 올리

친구들이랑 '공짜 돈이 왕창 생기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글쎄, 이젠 공짜 돈 따윈 바라지도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친구는 자기는 다르다고 했다.

'난 복권 당첨 되면 좋겠어. 그 돈으로 친구들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주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는데 구애가 없기 위해서 복권을 바란다고?


그 친구가 다시 보였다.

제 집에 친구들 불러 밥도 해 먹이고, 여행 가서 새로운 먹을거리라도 발견하면 냉큼 자기 돈으로 사서 나눠주며 맛보게 하는 그런 친구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낸들 왜 공짜 돈을 바라지 않았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복권이 당첨되면, 얼마가 당첨되면 요거 사고, 조거 사고, 거기 가보고, 이것도 해보고..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좀 더 구체적이 되었다. 집을 늘일까? 차를 바꿀까? 그러나 대체적으로 실용적인 나는,

일단 얼마가 생기면, 얼마를 떼어 요기에 쓰고, 다시 얼마를 떼어 저축하고...

형제들에게도 얼마씩 나눠주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곤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뭘 해도 부족해. 그리고 귀찮아, 여기저기 나누는 거.'


그래서 공짜 돈이나 복권 따윈 생각도 않으며 맘 편히 지내온 지도 꽤 되었는데, 지난주, 공짜 돈, 아니 로또, 그것이 당첨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오스틴 시내 롱센터라는 곳에서 열리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러 다녀오면서 말이다.


서울로 치면 '예술의 전당' 혹은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인데, 딸 친구가 오스틴 심포니의 멤버로서 무대에 서는 덕분에 표를 얻어 구경을 가게 된 것. 딸네 집 주변을 자전거로 돌거나, 서늘한 내 방에서 유튜브 보면서 딸의 출산을 기다리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문화생활 나들이였다.


오늘의 연주 장소, 롱센터, 오스틴 시내 중심에 널찍한 공원을 끼고 자리한 멋진 곳이었다.

4층 짜리 주차장이 고가 도로처럼 길게 에워싼 그곳은 시내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른 저녁,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선들선들 바람이 잘 부는 그 공연장 마당에서는 오스틴 시내의 고층빌딩들이 눈앞에 즐비한 것이 정말 근사했다. 멀리 지평선까지 한눈에 휘돌아 볼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에서는 저절로 두 팔을 활짝 편 체 한 바퀴 스스로 돌게 하는 그런 자유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공연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벌써 행복해지는 느낌!


그런데 그 멋진 롱센터가 한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공연예술장이란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신 전설. 사실 나는 롱센터의 그 조 롱 선생을 딸아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뵈었다. 전동 휠체어를 탄 거구의 미국 노인이 내게 다가오셔서 무어라 말씀하시어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었던 것. 어수선한 피로연장에서 한복을 입고 휘적휘적 돌아다니던 내가 신부나 신랑의 엄마라는 것쯤은 단박에 알 수 있으셨을 것이다. 그분은 내게 '자신은 먼저 자리를 뜬다'는 것을 조용히 알리시느라 내게 다가오셨던 것.


나의 사위는 그분 이름의 장학금 수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분이 후원한 학생이 얼마나 많을 텐데 시니어 타운에 계신 분이 일부러 결혼식장에 오시다니... 나는 그 일이 우리 사위가 무척이나 전도양양한 젊은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엄청난 재산을 가지셨던' 분이 운전기사인지 비서인지 하는 남성의 도움을 받고 있을 뿐 그런 분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수선스러움도 없었다. 짧은 영어 능력과 잔칫날의 흥분으로 제대로 인사도 못했을 내게 조용히 미소 지으며 떠나시던 그 어르신.


어디서 뭘 해서 그리 큰돈을 벌으셨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더 큰 의구심은 그 많던 돈을 어디에 다 잘 정리하시고 단지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면 그만일 시니어타운에서 말년을 보내신다는 말인가. 그의 이야기는 내게 신선함 그 자체이었다.


내 이름을 딴 공간이 생길 만큼 어디에 기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겐 그럴 만큼의 돈도 없고 또 남은 인생 동안 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만약 로또 같은 공짜 돈이 생긴다면 아주 꿈을 꾸지 못할 일도 아니지 않겠는가. 나도 저 조 롱 선생처럼 음악당 하나 만드는데 당첨금을 몽땅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날 그 공간에서 아주 강력하게 들었다.

나는 벌써 그 음악당의 이름도 정해놓았다. '올리 아트 센터!'


이제 친구와 나는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어떻게, 오며가며, 로또 복권을 사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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