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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군필자 되다

미국일기_할머니 되는 나날

by 올리

98일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였다가 다시 떠나기까지 머문 기간.

미국 사는 외동딸의 산후 도우미의 역할을 마치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신생아를 돌보는 일도 걱정되었고, 딸과 사위 그리고 나까지 어른 셋의 삼시 세끼를 책임진다는 일도 부담되었다. 집에서 꼼짝 못 할 나날에 대한 스트레스도 걱정.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신생아산모관리사 교육과 요리 강습까지 받으며 나름 정성껏 준비했다. 그랬는데도 걱정되는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누군가 말하기를 '당신이 한 번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니 군대 간다고 생각하시지요!!!'

'군대'가는 심정으로 여기에 왔다.


'아기를 보면 다 보상이 될 거예요'

'아기가 이뻐서 서울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할지도 몰라요'


낭만적으로 조언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몸은 힘들지언정 아기의 존재는 '달콤한 보상'이 될 거라고.

그런 나날을 다 마친 나의 소감은?

몸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는데...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고 고백해야겠다.


아기도..

마법의 조커는 아니더라.

태어나서 이틀 만에 집으로 온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중얼중얼 노래를 불러주면 스스로 잠들던 그 존재.

꽁꽁 싸맨 아기를 안아 들면, 내 왼쪽 가슴 앞 10cm 거리에서 동그란 아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아기 얼굴을 보면 스스스... 내 몸 전체에 뭔가 퍼지는 느낌이 있었다. 분명 행복 호르몬임이 틀림없으렷다. 아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돌보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기에 대한 기쁨과 몰입은 문득문득 멈춰졌다.

다 큰 자녀, 결혼한 딸, 그리고 부모가 된 딸과 사위는 여러 모로 조심해야 하는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나는 누가 내게 싸움을 건 것도 아닌데, 누가 내게 화를 낸 것도 아닌데도 문득문득 숨이 턱 하고 막혀왔고, 답답하고 슬픈 생각이 온 몸을 압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성인이 된 자녀와의 적절한 거리를 두지 못했기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평소의 나대로, 내가 주인이었고 내가 주도자였던 삶의 방식과 태도가 이제는 딸과 사위에게 당연히 접수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움으로, 이어 섭섭함으로 고통스럽기까지 했지만 나중에는 받아들이고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 새 마음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눈물 꽤나 흘렸다. 히히히.


그러나, 나, 군대 가는 마음으로 여기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군필자가 된 청년들, 어떠하던가.

지금 내 마음이 그러하다.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로 나가는 청년들처럼 지금 내 마음은 훌쩍 컸고 몸도 단단해졌다.


그런데, 아기..

평소 아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내 손주라고 벌벌 떨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이 집의 아기는 딸 부부의 딸이지 내 손녀인 것이 먼저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들 세 식구 뒤에는 15분 거리에 살고 계시는 친조부모께서 포진하고 계시다. 그런데 외할머니인 나는?

1만 km쯤 떨어져 있다.

물리적 거리가 마음의 거리도 될 텐데, 흠뻑 정 들여놓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내 힘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하나뿐이던 내 딸을 온 정성을 다해 키웠다. 마음을 다해 혼인시켰고, 다시 온 정성을 다해 이번 '친정엄마' 도우미 역할을 수행했다. 그랬으면 되었다. 여기 있는 동안 울컥울컥 서운함이 생기곤 했더래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덕분에 자식 짝사랑은 여기까지, 두 번 다시 이렇게는 오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으니 하하하.

이래저래 투스텝으로 좋아라 하며 서울로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나는 분주하면서 고단했고, 우울하고 외롭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니, 서울에서 미국을 바라보며 자식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을 때나 여기 와서 자식과 지내고 있을 때나 나는 분주했고, 고단했고, 외롭긴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있든 다 똑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다시 맞을 서울에서의 삶, 뒤 돌아보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내야겠다.


이곳에서의 98일은,

내게 살림 능력을 향상 시켰고, 자식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어른의 마음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제 친정엄마 군필자가 되었다. 다시 만나는 오롯한 내 삶은 뭐든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잘 있어라, 미국아. 잘 있거라 얘들아.

기다려 인천공항, 군필 친정엄마인 내가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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