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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 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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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자고 있니?

엄마는 여기 온 지 1주일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새벽 2시쯤 하루를 시작하고 있네.


지금은 3시가 조금 넘었어. 그래도 무척 생산성 높은 새벽시간을 보내고 있지.

지나치게 일찍 깨기도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해가 두둥 떠오를 때까지 이것저것 할 일을 정리하면서 지난 넉 달 동안 밀린 일들을 짚어본단다. 낮에 움직이고 밤에 자는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야. 어제도 저녁 식사 후엔 치즈가 녹듯 정신을 못 차리겠어서 이도 닦지 않고 옷도 입은 채 잠을 자버렸다. 깨어 보니 세상이 온통 훤하더라. 아침 7시는 된 듯해서 드디어 밤 시간 동안 쭉 이어서 잤구나 싶었는데 왠 걸. 새벽 1시 50분. 방과 거실에 불을 켜 둔 채 잠들어서 한 밤중 집안이 대낮같이 환했지.


다시 쉽게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이렇게 네게 편지를 쓴다.

매일이 거의 이런 식이니 집 앞 공원에 운동하러 나가는 시간도 어둠만 걷히면 쓰윽 나갔어.

새벽 2-3시에 깨서 운동하러 나갈 때까지 몇 시간. 컴퓨터 앞에 차분하게 앉아 있는 그 시간은, 미국에서 돌아온 1주일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알찬 시간이 되었단다.

일주일간 뭘 했는지 나열해 볼까?


도착하는 날엔 바로 그날 오후에 미장원엘 갔다. 허옇게 된 머리 염색도 하고 깡충하게 잘랐지. 찰랑찰랑 가벼운 머리 길이는 역시 만만하고 좋더라. 이튿날은 주일이라 바로 교회에 갔지. 그것도 성가대 연습시간에 딱 맞춰서 일찍. 지휘자님과 반주자님, 성가대원들이 매우 반겨주시더구나. 존재감 없이 교회를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더군다나 목사님들까지 알은체를 해 주시니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봐. ㅎㅎ


그러고는 지난 몇 달 동안 놓쳤던 일들을 하루에 한 두 가지씩 해치웠다.

첫째, 세무서 방문. 매년 5월 종합소득신고를 착실히 해왔는데 이번엔 그 기간에 서울에 없었잖니. 미국 가기 전에 문의를 해 보니 돌아와서 6월 중에라도 신고하면 된다고 들었더래서 부랴부랴 다녀왔다. 이번에 기한을 지키지 못한 열외자 신분으로 갔지만, 부산스러운 분위기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의 도움으로 처리했던 예전의 5월 정기기간 때와는 달리 담당자를 직접 만나 처리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고 좋았단다. 게다가 지난해 신고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도 찾아주셔서 바로 잡았지. 성경에는 세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이더만, 내가 겪은 21세기 세무 직원들은 친절하고 또 엄청 전문적이더라.


운전면허증을 갱신하고 여권은 갱신 신청까지 후다닥 해 두었다. 이 둘은 기간 만료가 가까워와서 알림 통지를 받고 출국을 했더래서 귀국하면 바로 해야 할 일들로 적어두고 있었지. 덕분에 오자마자 면허시험장, 구청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시차 적응이 덜 된 데다 몇 달간의 서울 생활의 공백 덕분인지 온라인 처리는 자신이 없더라. 자주 찾지도 않던 관공서 사이트에서 아이디, 비번 맞지 않다고 하면 당황하고, pass 인증.. 그러다가 뭐라도 어긋나면 머리가 하얗게 되더라. 그래서 일단 온라인 환경에 내 머리가 잘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발로 뛰는 게 낫지.. 싶었단다. 그랬더니 뭐가 빠졌거나 잘못 알았던 것 없이 되어 착착착 진행되었어.

그런데 운전면허증..

말썽인 왼쪽 눈, 결국 시력 기준미달 판정을 받아서 2종으로 강등되었다. 원래 2종이었으니 서운할 것은 없으나 내 왼눈이 온전한 사회활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확인한 셈이지.


어제는 네 외가식구들을 만났다. 지난주 미국에 있을 때 지나버린 나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할머니께서 동네 냉면집에 모이라.. 하시며 마련된 자리. 네가 바리바리 싸 보낸 선물 보따리를 한 자리에서 풀 기회였으니 이때다 싶어서 싸들고 갔다. 그룹톡에 올라온 삼촌의 사진 보았지? 네가 사 보낸 셔츠, 좋아라 하셨지. 이모들의 사진들도 보았니? 네가 준비할 때는, 또 내가 들고 올 때는 큰 짐이 되더라만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내 선물 챙기지 말라..'라고 계속해서 떠들고 싶네. 안 주고 안 받자... 너무 야박한가? 네 생각은 어때?


할머니 잠옷 선물은 정말 좋아하셨어. 하루 종일 안마의자에 앉아 지내실 할머니께는 잠옷이라기보다는 예쁜 생활복 같더라. 내가 준비한 여름 모자까지 쓰시니 만족 지수 200%. 나도 할머니께는 선물하고 싶어서 모자를 찾았지만 미국에서 너랑 같이 쇼핑할 때 마땅한 것이 없었잖아. 여기 와서 딱 맞는 것을 찾았단다. 여름실로 손뜨개한 것인데 색 조합이 마음에 들었지. 그렇지만 약간 벙거지 스타일로 젊고 힙한 느낌이라 할머니가 좋아하실까 걱정했는데 손뼉까지 치시며 좋아라... 하셨지. 이모들은 모자 쓴 할머니께 '진짜 미국 할머니 같다' 며 부추겼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모들에게는 인실직고 하였단다. 서울서 산 거라고.


오늘은 부동산 사무실을 다녀와야 한단다. 내일은 은행 약속이 있네.

부동산과 동산.. 관련 사무를 봐야 하는 이 엄마, 부자 냄새가 꽤 나지?

은퇴자들의 꿈인 '월세 받는 임대인', 엄마가 마침내 그 지위를 얻을 예정이야.


7년 전, 길에서 오피스텔 분양을 홍보하던 청년 손에 이끌려 '적금 드는 기분으로' 오피스텔 분양받았잖니. 건물 신축이 완료되고 드디어 분양가 잔액을 납부해야 했지만 그것을 다 커버할 돈이 없어서 전세로 세 놓았던 그 오피스텔. 그러고도 5년이 지나는 동안 세입자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목돈이 모아지지 않아서 꿈꾸던 월세 수입은 시원찮았고 다주택자의 스트레스는 얼마나 크던지.

이제 전세입자를 월세입자로 전환할 수 있는 목돈이 모아졌다. 그것을 어떻게 쓸지 의논하고자 부동산 사무실과 은행을 가는 거란다. 부자 엄마 두어서 든든하지? 엄마의 노후는 걱정 마라. (ㅎㅎ 큰소리 중!!)


지난 3월, 집 떠날 때 펼쳐 두고 갔었던 겨울 이불을 어제 다 정리했다.

먼지 털고, 빨고, 말리고, 다시 끼워 맞춰 장롱에 넣었다. 쓰지도 않으면서 아까워서 버리지 않았던 물건들도 요 며칠 사이 후다닥 처분했지.

데스크톱 PC를 노트북으로 바꾼 후 거추장스러워진 커다란 PC 모니터를 3층 아주머니께 드렸다. 네 방에 있던 오래된 TV도 가져가셨어. 좋아라 하며 가져가서 잘 쓰겠다고 하시니 다행이지. 그리고 내 말만 듣지 않던 그 컬러 프린터는 정수기 필터 교체하러 오신 아저씨가 들고 가셨어. 그 프린터를 쓸 줄 아는 우리 식구들은 이제 이 집에 없는데, 내 좁은 책상에 올려 둔 체 지낼 필요가 없잖니. 누군가 집에 왔을 때 쓰지 않을까.. 싶어 끼고 있었지만 결단을 내렸다. 이제는 집에서 출력할 일도 거의 없는데 누군가는 당장 잘 쓴다면, 나는 스트레스 안 받고 더 좋은 거 아니겠냐. 잘했지?


그런데 말이다. 네가 그렇게 없애라고 노래를 불렀던 그 식탁과 의자 세트. 그것들도 처분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쉽게 진행되진 않을 것 같네. 사진 찍어 '당근'에 올리고 보니 어찌나 근사하던지. 당연히 '나눔'으로 올렸었는데, 업로드된 사진들을 보니 은근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판매가격 9만 원'으로 바꿨어.

'나눔'으로 올렸을 때는 몇 명이 보는 것 같더니 가격이 붙으니 딱 스톱. 조회하는 사람이 없구나.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돈은 내서라도 없애야 하는 건데 내가 그만... ㅎㅎㅎ

나눔으로 전환해서 다시 올려야겠다.


아참, 이렇게 바쁜 중에 꼬물꼬물 소꿉장난 같은 일도 했단다.

가전제품 이것저것을 처분하다 보니 엄마가 예뻐라 하던 모녀 조각상이 애매해졌어.

그래서 프린터를 없애고 한결 넓어진 내 책상 위에 두었어, 매일 보려고. 그런데 딱딱한 책상 위에 올려진 돌덩어리 모녀상이 불안해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뭐를 했겠니? 모녀상이 올려질 받침을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눈 수술 후, 돈보기 쓰는 할머니 된 후, 바느질 도구를 펼치는 것이라 걱정되었는데 돋보기를 코에 얹고 덤비니 할 만은 하더라. 덕분에 1.5*4cm짜리 조각 바닥을 받쳐줄 폭신한 헝겊 받침을 완성하였다.

이제 모녀상이 발 시리지 않게, 푹신하고 안정적으로 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눈에 쏙 들어오는 그 예쁜 모녀상. 이제까지는 그것이 너와 나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너와 네 딸의 모습이구나 싶다. 나는 그리 생각하고 너와 예쁜 네 아가를 보듯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매일 바라보련다.


그리고 또...

일본식 가정요리 수강신청도 했어. 7월부터 시작이다.

주부생활을 건너뛰고 친정엄마가 돼버린 내가 이번에 네 집에서 산후조리 뒷바라지에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음식 만들기였지. 이제 시간 많은 은퇴자 신분이니 이것저것 부지런히 잘 배워서 좀 나은 친정엄마 손맛을 보여주마.

귀도 뚫었어. 귀걸이 두 개씩 붙인 것이 예뻐 보여서 나도 해야지.. 했지만 용기가 안 났지. 내 친구 중엔 아직도 귀를 전혀 뚫지 않은 애도 있는데, 두 개라니... 주저되는 마음도 있었지. 그런데 미국 다녀오니까 용기가 확 나네. 지금 엄마 양쪽 귀엔 예쁜 귀걸이가 두 개씩 꽂혀있다. 한 며칠 자꾸 보니 왼쪽 귀는 한 개 더 뚫을 걸... 하는 아쉬움도 생기네. 이것도 중독이라던데 다음에 볼 때는 엄마의 양쪽 귀가 번쩍번쩍 할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이리 지내고 있다.

자리에 누우면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이 들긴 하지.

여기가 오스틴인가, 아니면 그 오스틴에서 생각하던 그 서울일까...

아니, 아니... 그리워했던, 그리고 다시 그리워지는 내 딸이 살고 있는 오스틴이던가... 아닌가....

그렇게 태평양을 서너 번 오간 뒤에야 '여기는 서울이구나.' 깨달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단다.


그러고는 이렇게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지.

네게 편지를 쓰다 보니 새벽 6시가 훌쩍 지났네.


갓난아기와 네 남편과 너, 그렇게 셋이서 보내는 나날,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렴.

멈춰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멈추어 쉬며 돌보는 시간.

엄마가 늘 기도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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