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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도... 저런 날도...

미국일기_할머니 되는 나날

by 올리

딸네 집에서 지내면서 남들도 다 겪는다는 '친정엄마의 힘든 나날'에 눈물 바람인 때도 있지만 오늘 같은 날도 있었다. 기분이 마냥 좋은 날.


그런데...

딸 집 살이의 아픈 마음 마주하며 브런치스토리에 글로 옮긴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제 나는 딸과 또 부딪혔다. 발단은 이러했다.


저녁 식사 후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 보니, 사위는 결혼하는 친구의 축하 모임에 갔고 딸이 혼자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었다. 나는 저녁 식사 후 후식으로 먹으려던 파이를 먹지 않고 나갔더래서 집에 들어서며 바로 냉장고에서 그 파이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이제 우유를 다 먹고 제 엄마랑 눈맞춤 하고 있는 손녀 곁으로 가서 아기를 몇 번 얼르고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파이 저거,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너 먹으려고 하면 안 돼에~.'


저녁밥을 잔뜩 먹었는데 뭘 또 먹나.. 하는 나 스스로의 자책감으로 약간은 장난기 있게 말을 하고 내 방으로 왔다. 사워를 하려고 옷가지를 챙기는데 똑똑똑.


딸이었다.

쓱 들어오더니 대뜸 '엄마는 왜 그렇게 말투가 부정적이야?'


?


'나 그 파이 먹고 싶지도 않아. 그냥 엄마가 알아서 먹으면 되지, 왜 다른 이는 먹으면 안 된다는 그런 부정적인 소리를 해?'


부정적이었다고?


이번에 미국 와서 딸에게 종종 듣던 지적 사항이다.

내가 매사에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다는 거.

아까 내가 파이 먹겠다고 했던 그 말이 부정적?


딸이 산후우울증이라도 걸렸나 생각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아니... 그게.. 뭐... 그러면서 해명을 하는데...


'저 번에 아기 목욕시킬 때 우리 앞에서 팔짱은 왜 끼고 보는 거야... '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줘. 아니, 그건 뭐... 하면서 중간에 말 자르지 말고.. '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 다 괜찮은 거야?'


아, 아, 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내가 대꾸하면 할수록 우리의 대화는 더 엉키고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 그런 게 다 거슬린다는 소리인가?

곰곰 들어보니 낮에 있었던 대화도 마음에 걸렸다.


점심식사를 위해 둘러앉은 식탁에서 딸은 빅뉴스라며, 남편이 자기와 나를 위해 시내 호텔에 스파 예약을 해 놓았다도 했다. 사우나하고 마사지받고 맛난 음식도 먹으며 어머니 좋아하시는 수영도 하면서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곳이라고 사위도 싱글벙글 웃으며 설명을 거들었다. 그날 아기는 자기가 책임지겠으니 두 숙녀분은 아침 일찍 가서 마음껏 놀다 오시라는 것.


아니 왜? 갑자기? 누구 생일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좋아라 했다. 그리고는 '아이고 신난다' 하며 으쓱으쓱 어깨춤까지 추어 보였다. 그런 나를 보며 사위도 딸도 킥킥킥. 나는 우하하하.


그러면서 이어진 이야기는, 그날 저녁에 사위는 친구들과의 총각파티에 갔다가 내일 아침에 들어올 거라는 거였다. 나는 사위에게 '아이고, 방탕하게 놀려고 미리 이런 큰 선물을 우리한테... ' 그랬더니 사위는 '아녜요, 그냥 어머니랑 C(딸)가 힘들었으니까 즐겁게 다녀오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셋은 다시 또 하하하 호호호.


이랬었는데, 지금 딸이 아까의 그 대화마저 소환하며 지적하고 있다.

'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왜... '


그래, 방탕... 좋은 말은 아니지. 내가 또 걸렸구나 싶었다.

그날 밤 모인다는 사위의 친구들은 나도 아는 이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은 우리 아이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섰던 청년이고, 얼마 전 한인교회에서 그의 부모를 뵙고 결혼 축하 인사도 나누었던 터라 그런 장난스러운 멘트는 자연스러웠다. 사위에게는 통과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딸에겐 통과되지 못했나 보다. 아니, 나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사위에게도 통과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대화할 때 교포 청년인 우리 사위의 한국어는 완전하지는 않다.

'아, 그랬구나요.' 같이 늘 쓰는 말인데도 문장 끝부분이 얼버무려지거나 생략되거나 또는 좀 엉뚱한 어미가 붙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의 즐겁고 유머스러운 감정의 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나는 그렇다고 믿었는데...


내가 긴장을 풀고 행동하고 나면 딸에게서 이런 지적들이 돌아오곤 했다.

나의 당황스러움은 놀람을 넘어, 억울하고 답답하고 슬프게까지 느껴졌다. 아무리 애를 써서 설명을 해도 딸은 그게 다 나의 변명이란다. 자기의 말에 공감을 못하고 있단다.

툭 툭 내뱉기 전에 생각을 해달라.. 는 딸과, 부정적인 의도가 없는 것을 왜 그렇게 듣냐는 나의 입장,

대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반박만 더해지고 흥분한 목소리는 높아지기까지 했다.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 못마땅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집 밖은 그 밤에도 34도가 넘었다.


결국 '나 샤워 좀 해야겠다'하고 방을 나왔다.

샤워기 물을 맞으며 '으아아~' 하는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눈물이 줄줄줄.


여기 생활의 불편한 마음은 글을 쓰며 겨우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또 시작되다니.

샤워를 어떻게 했는지... 젖은 머리를 한 채 결국 집을 나와버렸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더운 공기 때문인지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전날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던 나의 글을 읽어보았다.


그 속엔 딸네 집에서 겪는 마음고생을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 변화시켜 보겠다는 결심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이 상황이라니...

좌절감이 들면서도 문득 든 생각 하나. 이제는 딸이 나를 객관화하려는구나!


엄마를 보통의 타인으로 보고, 싫은 거, 맘에 안 드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지는 않겠다'는 도전.

지난 세월에 만들어진 엄마의 상처로 자신을 볼모 잡지 말아 달라는 그런 이야기는 아닐까.

내 딸이라고 내 방식으로 대하고, 누가 누구이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좋은 사람이기에 사랑하고 용납하고 지지하는 그런 성숙한 관계로 가자는 뜻인가.. 하는 생각.


고등학생 때인지 대학생 무렵인지, 나는 내 엄마의 얼굴이 못생겼다는 생각이 확 들었던 때가 있었다.

바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던 엄마 모습 때문이었는데, '엄마, 화장실 문 좀 닫고... ' 했더니 '식구끼리 뭘 그래?' 하시고는 그대로 문을 열어 놓고 볼 일을 보시는 거였다. 문을 닫으라고 했는데도 고집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고 앉아 계셨던 엄마 얼굴이 얼마나 보기 싫던지 그 때 처음으로 '엄마가 밉다, 싫다'라고 생각하였던 그 기억.


나에게 엄마는 하늘이었다. 올려보면 눈물이 주르륵 나는 그런 하늘.

어려운 형편에서 온갖 고생하시며 사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던 터라, 엄마를 위해 사랑과 효도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엔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공부 잘해서 기쁨을 드리고,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려야 한다는 마음은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늘 '우리 엄마 이쁘다'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다 그날 그 화장실의 열린 문을 통해 보여준 엄마의 얼굴은 객관적으로 미웠고, 흉하기까지 하였다. 그 후 내가, 엄마의 기대만큼 잘 살아내지도, 사랑을 드리지도 못하였고, 엄마로부터 '네가 그럴 수가..' 하는 소리마저 듣기도 했었을 때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나에게 집착하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으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엄마에 대한 비판이 그날 엄마 얼굴을 바라보던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지.. 싶었다.


나에 대한 딸의 거듭되는 불만은, 이제 엄마와는 성인 대 성인으로서, 거리를 갖고, 좋은 사람들로서 관계하자는 요구처럼 이해되었다. 생각을 그리하니,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거실로 나가 밤새 먹이고 던져둔 아기 우유병과 물건들을 소독하고, 설거지 감을 모으고, 거실 여기저기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등 조용히 나의 아침 할 일을 했다. 그러고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딸 내외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까지 독서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의 상황, 예전의 마음이라면 딸과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딸에게 '너를 키우며 고생했던 나에게 사랑으로 보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고 있었고, 나의 충만하지 못했던 결혼생활, 혼자 지내게 된 상황 등을 이유로 딸은 나의 유일한 자녀이니까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채무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는가 반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독서를 하고 있는데 똑똑똑.

방문을 여니 꺼부덕 꺼부덕 겨우 눈을 뜬 어린 아기를 높이 세워 안고 딸이 서 있었다.

그런 아기를 내게 안겨주며 하는 말, '죄송해요.'


나는 고맙다고 했다. 먼저 말 걸어 주어서.

그랬더니 딸이 넌지시 책 하나를 소개해도 되겠냐며 같이 읽어보잔다. '그래 좋지.'

그런 제안도 해주니 그것도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제 딸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지난날의 아픔과 고생에 대하여 보상받아야 한다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는 각성이다. 그리고 이러했던 상황과 기억들을 이렇게 글로 남기어, 마음 아팠던 딸과의 시비들을 기억하고, 딸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느낀다.


마침내 오늘, 그 호텔에 다녀왔다.

오스틴 시내에 있는 리조트 속에 있었는데 그 리조트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자동차로 시내를 달리다가 갑자기 숲 속 길로 들어서는 듯하더니 저 멀리 초록빛 드넓은 잔디밭과 멋진 건물들이 보였다. 구불구불 조금 더 가니 얼핏 사이비 종교 집단의 성지 같은 느낌마저 드는 화려한 거기가 바로 우리의 목적지였다.


넓은 곳이니 꼭 발레 파킹으로 들어가라고 종업원에게 팁으로 줄 현금까지 딸의 손에 쥐어주었다는 사위의 섬세함. 잘 생긴 남자 직원이 열어준 문에서 내리는 것을 시작으로, 어서 오시라고, 이리로 가시라고, 요렇게 조렇게 설명하는 직원들 앞에서 못 알아듣고 주눅 들까 봐 내 옆에 딱 붙어서 하나하나 짚어주는 딸의 당당하고도 침착한 지원. 그런 것에 힘입어 건식, 습식 사우나를 들락거리고 탕에서는 아 시원해.. 하며 잘도 놀았다. 예약해 둔 마사지는 인도인으로 보이는 듬직한 아가씨의 맘에 꼭 드는 서비스로 이어졌고, 사진으로만 보던 야외 풀장의 썬베드에 누워 좌 백인 우 백인과 함께 먼 산과 하늘을 보며 폼도 잡아보았다.

'이런 곳 처음이야..'라고 할 만큼 촌사람은 아니었지만, 그토록 소원하던 '가족(딸)'과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으니 내게는 더없이 호사를 누린 하루였다.


'인 앤 아웃' 햄버거를 저녁거리로 사 들고 들어서는 우리 모녀를 아기와 함께 맞이하는 사위의 모습은, 하루 종일 아내와 장모가 즐겁게 지낼 상상으로 행복했었을 그런 모습이었다.


친정엄마의 나날 중에 이런 날도 있다, 그저 기분 좋아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날.

딸로부터 지적받고 상처받으며 마음 멀어지다가,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기쁨을 품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날들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그런 중에 나는 눈물로 글을 쓰며 셀프 치유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말이 맞을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왠지, 이러면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순 넘은 내게 성장이라니.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어른'의 사랑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런 날 저런 날 맞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나는, 성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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