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기_할머니 되는 나날
미국 온 지 두 달 반.
이제 2주 뒤면 서울로 돌아간다. 이 마음을 어찌할 거나...
아기가 보고 싶겠지. 그러나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마음 단단히 먹었으니 괜찮을 지도.
'아기'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나의 진짜 손주를 맘껏 예뻐하기는 왠지 조심스러웠다.
아기는 딸 부부의 것. 나아가 이곳 최씨네 월드의 첫 번째 손주다. 나의 손주는 이곳 미국에서, 이 동네에서 자랄 것이다. 자식을 짝사랑하는 일에서 이제 좀 정신을 차리는 중인데, 손녀 사랑에 다시 정신을 잃을 순 없다는 생각이 나를 꼭꼭 붙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서울에 와주면 좋겠고,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가 주면 더 좋겠지. (하하 남들이 그러더라.)
손녀는 여기 친부모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외할머니는 멀찍이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
나의 딸은 엄마를 서울에 두고도 미국에서의 삶을 '선택' 했는데, 나도 좀 선택해 보자면 '손주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침 줄줄 흘리며 좋아라 하는 모습은 미뤄두련다. 카톡으로 '아기 잘 있냐'라고 묻는 일도 먼저 하지 않으리라. 아기 소식을 보내주면 좋고, 안 주어도 상관없다.
나는 앞으로 40년은 더 살 것이다. 우리 아기가 40살이 될 때까지 나는 그 아이의 할머니일 것이니 손주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은 앞으로 많고 많다. 손주를 사랑하고 이뻐라 하는 일은 꼭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지금은 물러서 있어도 된다. 그리고 나의 삶을 담담히 이어가야지.
그런데 여기서 손주를 돌보며 새삼 느낀 것이 있다.
우리 아기,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다. 그 두 달 동안 나는 아기에게 넘치는 애정으로 주체하지 못하고 그 이름을 계속 불러주었다. 거기에 아기 손발을 이뻐라 만져 본 것, 궁둥이 토닥인 거, 눈 맞춤 한 것, 내 윗니 아랫니 모두 보여주며 웃음을 건네준 거, 오아오아 되지도 않는 온갖 이쁜 말을 해준 거, 뺨 비빈 것, 으아악 참지 못하고 꽉 안았던 거... 수 백번? 아니 수 천 번이다. 요 두 달 사이 손녀에게 건넨 나의 애정 표현의 횟수 말이다. 그런데 나만 그랬나?
아이의 어미 아비는 밤까지 꼬박 새우며 아기를 보듬었으니 눈짓 한 번에 '으아악' 숨이 넘어가고, 허둥허둥 아기의 손짓 발짓에도 '오구오구 잘한다' '우쭈쭈쭈' 탄성을 지르곤 했다. 그들 각각의 애정표현 횟수는 수 만 번을 훨씬 넘었으리라.
게다가 사돈 내외.
며느리 출산 후 삼칠 일을 못 기다리시고 손주 보러 훅 달려오셨다. 그렇게 길을 트시고는 퇴근길에, 어디 다녀오시는 길에, 오며 가며 틈만 나면 들르신다. '안사돈 드시라고 갖고 왔어요' 하시며 간식 보따리를 건네주시는데, 눈은 아기를 향하고 다리는 벌써 아기한테 가 있으시다. 두 내외가 하하하 호호호, 어쩌면 저쩌면... 아기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시느라 내가 그 곁에 있다는 사실도 잊으실 정도. 키가 크신 바깥사돈은 아기를 안고 눈맞춤 하시느라 소파에 앉지도 않으신다. 아기는 할아버지 품에서 할아버지가 해 주는 말씀을 알아듣기나 한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편안히 잘도 있다.
안사돈은 꾀가 넘치신다. 모유를 먹이는 일이 수월치 않아서 분유를 섞어 먹인다는 며느리의 고충을 들으시더니 본인이 전담하여 분유를 공급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나는 안사돈께 '한꺼번에 여러 통 사지 마시고, 딱 두 통씩만 사시라'라고 귀띔하였다. 분유 공급을 핑계로 자주자주 아기 보러 오시라고.
사돈처녀들은?
달라스에서 직장 생활하는 막내가 아기를 보겠다고 달려왔다. 그런데 휴가 낼 형편이 어려워서 하루 만에 다시 달라스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그 와중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 남자친구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단다. 여자친구가 오스틴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 도시로 부랴부랴 달려왔는데, 사돈처녀는 그렇게 달려온 남자친구 만나야지, 조카도 봐야지... 몸은 하나인데 시간이 부족하니 할 수 없이 남자친구를 대동하고 나타난 것. 덕분에 나도 사돈댁 막내의 남자친구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 댁 큰 딸은 서울에 있었다. 장기 출장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조카를 보기 위해 거꾸로 미국으로 와서 휴가와 재택근무를 병행하였다.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조카를 본다고 이 집으로 달려왔다. 오빠 집 현관에 들어서는 그녀의 손엔 서울에서부터 사온 아기옷이 한 보따리. 신생아 조카를 만나다는 기대와 기쁨, 그리고 행복감으로 싱글벙글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눈앞의 사람이 고모인지 엄마인지, 아빠인지 아저씨인 줄도 모르는 어리디 어린 우리 아기를 두고, 얌전했던 사돈처녀들은 '꺄악' 돌고래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이뻐 죽겠는다는 표정과 몸짓. 이마는 누굴 닮았고, 눈은, 코는, 피부는.. 입술은 어떻고 저떻고... 꼭 끌어안고는 내려놓치를 못한다. 그렇게 다녀갔던 사돈처녀들은 '줌미팅 앞두고 한 시간 여유'가 있다며 들르고, 달라스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들르고...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더 아기를 보려고, 이뻐해 주려고 애를 쓰며 시간을 내어 아기를 보았다.
서울의 외가는 어떤가.
아기 소식에 목말라하는 이모, 삼촌, 할머니 등 온통 노인들이 항시 대기 중이시다. 애 엄마가 아기 사진을 올릴 때마다 환호하며 그룹 톡에 올려진 사진에 머리를 모은다. 안 보이는 눈 비벼가며, 돋보기 써가며, 사진을 확대해 가며... '아이고, 어쩜 이렇게 예뻐. 엄마 아빠 이쁜 점을 다 모았네. 어이쿠, 이 의젓한 모습 좀 봐'.
어쩌다 페이스톡이라도 연결하면 탄성, 탄성, 탄성이 넘쳐 아우성이다.
'M아 할머니야, M아 할아버지야.' 삼촌할아버지, 이모할머니, 또 이모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 많기도 하다.
'웃어봐, 아쿠, 오꾸, 아이 예뻐라. 까꿍, 찡그리기도 하네, 어쩜 저리.. 오호, 착하다 착해.'
아기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어른들이 소리치며 난리 난리, 시끌벅적.
서울의 가족들이 아기 보고 웃느라, 덕담 폭격 하시느라 기가 빠지실까 걱정이 될 지경.
그만 진정들 하시라고 전화를 끊곤 한다.
그러니 그러니..
우리 손녀는 이쁘다, 귀하다, 사랑스럽다는 소리, 가족들에게서 들은 횟수 다 합치면 수 억 번이 넘을 것이다. 지구에 온 지 단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수 억 번의 사랑이 담긴 말들과 사랑이 넘치는 표정들이 아기에게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우리 아기는 이런 격려와 지지의 좋은 말과 반응들을 받아먹으며 하루하루 크고 있구나.. 생각되었다.
그렇지 못한 형편에서 자랄 아기들이 생각난다.
미혼모의 아기들이나 심지어 버려지는 아기들. 그 아가들도 우리 집 아기처럼 사랑의 말, 격려의 말, 지지의 말을 소나기 만나듯 흠뻑 받으며 자라야 할 텐데, 누가 해주나, 수 억 번의 사랑의 말을...
서울로 돌아가면 이들 아기들을 돕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내 손주에게 했듯이, 이웃의 아기도 잘 자랄 수 있도록 사랑과 지지의 애정 표현을 수 천 번이라도 해 주고 싶다.
'아기야, 너는 참으로 예쁘고 귀하구나. 이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