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그 분 오셨네~

당근 당근 당그~~~은

by 올리

마침내 그날이 왔다.

미국에 있는 이쁜 손녀딸이 엄마 아빠와 함께 서울에 온 바로 그날이.


90세가 넘으신 외할머니, 즉 나의 친정어머니께 아기를 보여드리고 뒤늦은 출생신고도 할 겸 딸네 세 식구가 서울에 왔다. 3주의 짧은 휴가 기간 중 한 주는 이미 이런저런 일정으로 보내고 오는 길이라 서울서 2주를 보내고 돌아가면 바로 일과 육아가 다시 시작된다. 그런데도 이삿짐 같은 짐보따리를 이고 지고 왔다. 미국 대륙 중간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리고 태평양까지 건너 한 해가 저무는 12월 31일, 마침내 그들이 도착했다.

딸로부터 '이번 겨울, 서울에 가야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미국에서 서울까지 그 먼 거리를, 이 추운 겨울에?

9개월짜리 아기가 괜찮을까...


그러나 아기 부모가 이왕에 정한 일, 아기 맞을 준비나 잘해보자는 결심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우선 침구를 정비해야 했다.

딸이 쓰던 방엔 2인용 침대가 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세 식구. 아기가 자고 놀 수 있는 바닥깔개가 필요했다. 손님용으로 사용하던 요와 이불들을 모아 솜도 다시 틀고 커버도 새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주는 솜틀집 찾기가 어려웠었다. 십여 년 전엔 가까운 성산동에 잘하는 집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집들이 다 없어졌나보다. 아는 정보가 있는지 친구에게 전화하니 '그냥 버리고 백화점 가서 사.' 그런다. 심지어 90세이신 나의 친정어머니마저 '그 솜 아깝지만...' 그러시면서 그냥 새로 사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달랐다.

기존의 것을 새로 꾸미든 백화점 가서 후딱 사버리든 비용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새로 꾸미려는 손님용 이불들은 내가 결혼할 때 혼수로 장만했던 것이다. 침대 생활이 자리 잡으면서 두껍고 무거운 것이 불편하여 솜을 새로 틀고 커버를 바꾸어 손님용으로 쓰던 이불들.

친정엄마로부터 '정말 좋은 솜'으로 만들었다고, 요즘은 그런 솜 구하지 못한다고 듣곤 했던 바로 그것.


그 '고급'이었다는 '최상품' 솜이 진짜 그렇게 비싼 것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려운 형편에서도 좋은 것으로 꾸미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그 이불들을 소중히 간직해 왔다. 그래서 옛날 이불이라고 이제 잘 쓰지 않는다고 대형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손녀딸 방문을 계기로 다시 솜을 틀고 요즘 유행에 맞게 두께와 사이즈를 맞추어 꾸미자는 생각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공장형 업체만 나왔다. 개인이 하는 동네 솜틀집 같은 곳을 찾아 들어가다 보니 '당근'이라는 앱에서 한 집이 소개되고 있었다. 솜 트는 공장을 운영하며 커튼이나 이불 커버를 제작해 준다는 서울 대방동의 솜틀집. 두꺼운 솜이불 세트에 여벌 얇은 이불까지 합치니 이불과 요 세트를 두 벌이나 만들 수 있었다. 요 두 채는 앙금앙금 기어 다니는 손녀를 위해 거실에 주욱 깔고, 이불 두 채는 아기의 잠자리로 쓰려고 것이다. 아기의 어미와 아비는 침대에서 편히 자고, 아기는 침대 곁에 두 겹으로 펼쳐놓은 이불 위에서 뒹굴 뒹굴. 이렇게 첫 준비, 이부자리 새로 꾸미기를 완료하였다.


그 다움엔 아기 용품.

2주짜리 서울살이에 꼭 있어야 할 아기용품은 무엇일까.

필요한 것이지만 잠깐 쓸 것이므로 가급적 '당근 거래'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시트와 식탁의자!

미국에서는 방금 태어난 아기도 퇴원하여 집에 갈 때는 반드시 카시트로 이동해야 한다. 한국처럼 조부모나 산모가 조심조심 안고 가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 사시는 사돈댁 내외, 가끔씩 아기 봐주는 일에 동원될 때를 대비하여 각자의 자동차에 카시트를 설치하셨단다. 한국의 법령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조카들 경우를 봐도 아무래도 카시트는 필수품이었다.


그리고 유아용 식탁의자.

손녀가 이유식을 시작한 지도 두어 달 지났다. 비록 받아먹는 형편이지만 한 입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기분 좋다고 두 팔을 팔짝팔짝 흔들어대는 아기 모습을 생각하니 유아용 식탁의자는 정말 필수품!

당근 앱으로 검색해 보니 종류도 가격도 무척 다양했다.

카시트는 자동차에 무슨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게 뭔 지 몰라 아리송했고, 유아용 식탁의자는 너무 많았다. 아주 많은 중고 물건들이 설명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는데 어려웠다.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몰라 관심 가는 물건이 생기면 인터넷 포털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사진과 물건 설명을 잘 살펴보고 또 보았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막상 정하려니 힘들어졌다. 휴대폰을 내려두고 다른 일 하다가도 다시 들고 들여다보았다.

마침내 잘 찾아서 신박하게 장만했다.

- (회전까지 되는) Nuna 카시트 12,000원

- (단단하고 묵직한) 옥소 식탁의자 20,000원

이것들은 5세 정도까지 쓸 수 있단다.

손녀가 5세가 될 때가 한두 번은 더 서울에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솟아났다.!


그리고 검색하면서 '이것도 필요하겠네..' 싶어서 샀던 것.

- 샤워핸들 8,000원


그런데 그 무렵 딸도 '샤워핸들'이라는 것을 지인에게서 넘겨받았는데 (아마존에서는 한국의 인기 있는 물건 다 판단다) 손녀가 엄청 불편해하며 운다고 해서 실망. 신나게 사 왔다가 기운이 쑤욱 빠졌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던 것은, 그즈음 바로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후배네가 손녀를 보았다는 소식이었다.

영유아 용품은 사용기한도 짧고 심지어 선물 받고도 사용 못 하는 경우도 흔하다.

내가 이렇게 사 모은 것, 잘못 산 거 포함하여 그 집으로 보내겠다고 했더니, 후배도 좋단다, 내가 물려주기만을 기대하고 있겠단다.


하여 이번엔 진짜 그냥 단순한 아기 목욕통을 새로 샀다.

- 슈너글 아기 욕조 1,000원

이렇게 마련해 두니 꼭 '필요한 것' 들만을 알뜰하게 장만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런데 한 며칠 지나자 문득 또 사두어야 할 것이 생각났다. 바로 기저귀와 분유.

긴 비행이므로 아이 용품은 이동 중에 필요한 것들로 최소한 챙겨 올 것이다. 아기가 우리 집에 들어서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기에 기저귀와 분유 정보를 딸에게 묻는 통화 끝에 '엄마, 이런 거는 '당근'으로 사는 거야' 한다. 대형 마트 가서 사는 것인 줄 알았는데.. 다시 또 당근 검색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감기에 걸려 한 며칠 드러눕는 상황이 생겼다.

교회는 물론 바깥출입을 못하며 끙끙 대는 중이었으나 당근 검색은 누워서도 더 열심히.

마침내 적당한 분량의 '팸퍼스 5단계'를 만나 이불을 제치고 벌떡 일어나 받아왔다.

- 팸퍼스 팬티형 기저귀 3 봉지(+낱개 30여 개) 35,000원


그런데.. '팸퍼스'도 맞고 '5단계'도 맞았는데.. 팬티형이었다.

팬티형은 우리 아기한테는 아직 불편할 수도 있단다. 기저귀에 '팬티형, '터치형'이 구분되는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그저 2주 동안 몇 장이나 쓸까 가늠하는데 열중하였고, 게다가 앓아누워있는 동안이었으니 상품 정보 확인에 느슨한 상태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열심히 검색해서 마침내 맞는 것으로 잘 장만했다.

- 리베로 터치형 기저귀 2 봉지 42,000원


그리고 분유,

- 압트밀 1통 37,000원


기저귀나 분유값 벌러 다닌다더니, 오래 두고 사용할 카시트나 의자보다도 훨씬 비싸서 놀랬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기 오기 D-2 날 낮에 띠링 카톡 문자가 들어왔다.

'아기 예쁜 옷들은 다 여름용이네. 서울에서 교회 갈 때 입힐 옷이 없는데... '


내가 산후조리 해주러 미국 갔을 때, 아기 옷이 너무 많아서 놀랬었다. 죄다 선물들.

태어나기도 전에 '인싸'였던 우리 아기에게 겨울 옷이 없었구나. 그렇구나 그들은 텍사스 사람들.


그때 나는 음식 준비 중이었었다.

애들 먹일 음식을 며칠 전부터 하나씩 준비해 오고 있어서 갈비 손질만 해 두면 거의 마무리되려는 시점.

하루는 전복 손질, 하루는 육수 만들기, 다른 날엔 전 부치기, 그리고 힘닿는 대로 이것저것 야채 다듬고, 데치고, 썰어놓고, 소스도 만들며 하루에 한 두 가지씩 장만하고 있었다. 아기 먹일 이유식도 어떤 것을 잘 먹을지, 얼마나 무른 것이어야 하는지 몰라 3가지 정도를 미리 만들어 작은 통에 샘플러처럼 만들어 냉장실에 두고, 따로 큰 통에 담아 냉장고에 얼려두었다. 그것도 하루에 한 가지씩 만들었다.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딸네 식구가 집에 들어서면 바로 아침밥을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짧은 시간에 휘리릭 못해낸다. 이렇게 며칠에 걸쳐서라도 미리미리 해두고 해 두어야 그 아침에 지지고, 데우고 섞어서 백년손님 사위를 맞는 첫 식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막바지 힘을 쏟고 있는데...


일단 '두꺼운 우주복 입히고, 그날 와서 백화점 가서 이쁜 옷 하나 사자.. '


회신을 하고는 다시 당근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못 찾아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실은 내가 이미 아기의 패딩 우주복 한 벌을 장만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 아가방 패딩 우주복 10,000원


실내복 입히고 아기를 우주복에 쏙 넣으면 이 추위에 굳이 우주복을 벗길 일이 있을까.. 했던 것이다.

아기의 패딩 우주복을 당근으로 사 두었을 때도 스트레스가 있었다.

보통 아기 옷은 오래 입히려고 큰 사이즈로 산다. 그런데 잠깐이니 딱 맞게 이쁘게 입히자.. 마음먹었지만, 어떤 게 딱 맞는 것일까. 72cm, 8kg짜리 아기에게 어떤 치수가 맞을까나. 당근에 올라온 옷들의 설명 중에는 '사이즈 조언은 못한다'라는 문구가 자주 띄었는데.


저녁 무렵 당근 앱의 알림 문자가 들어왔다. 체리 무늬 아기 원피스?

아, 내일 아침 도착이다. 시간이 없어서 즉시 달려갔다.

그러고 가서는 한 벌이 아니라 2벌을 사가지고 왔다.

내가 채팅할 때 교회 입히고 갈 옷이라고 했더니 '이 옷은 어떠시냐'며 다른 것까지 들고 나온 것.

내 딸 또래의 아기 엄마였는데 친정엄마가 사주셨던 좋은 옷이라는 그 상술이 밉지 않아서 오케이.

- 에뜨와 아기 원피스 2벌 30,000원

어떤 친정엄마는 새 옷을 사주시는데... 나는...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에 슬쩍 웃음이 나왔다.


나도 뭐 그럴 수는 있지만 나는 내 아이 키울 때도 많이 물려받아 입혔다.

너무나 짧게 지나가는 아기 옷 사는데 비싼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그런 나였어도 아이가 청소년 무렵부터는 아이에게 잘 맞는 예쁘고 멋진 옷을 사주는데 인색하지 않게 키웠다. 합리적으로 쓰고 인색하지 않게 아껴서 나의 독립적이고 멋진 은퇴자 생활을 위해 잘 쓰려는 생각이다.

딸도 내가 그렇게 살길 바랄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더.


이렇게 저렇게, 좌충우돌 무용담 같았던 지난 가을 겨울의 당근 줍줍하는 생활이 끝나자, 마침내 그들이 왔다.

지금... 나의 예쁜 아가 손녀딸은 제 엄마가 쓰던 저 방에서 자고 있다.


아... 기쁘고 기쁘다.

우리 집 아기 천사, 바로 그 분이 오늘 우리 집에 와 계신다는 사실.

이거 실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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