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다,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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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1년 4개월 만이다. 이번엔 오전반이다.

퇴직 후 3년이 지났다. 쇠스랑에 묶여있던 코끼리가 그러하듯, 퇴직 후에도 직장 다닐 때 그랬던 것처럼 저녁 9시에 시작하는 강습만을 다녔다. 하루를 온전히 쓰는 데에 수영이 방해하지 않도록 늦은 저녁에 가는 습관을 퇴직 후에도 이어갔었다. 그런데 백내장 수술을 하게 되었고, 딸아이 산후 도우미 하러 미국 가서 지내야 하는 등 불가피하게 수영장 다니기를 멈추게 되면서 수영장 가는 '시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날의 '할 일로서의 수영하기'를 늦은 밤까지 남겨 둘 필요가 있을까.


아침 8시로 등록하고 다녀보니 이만 저만 좋은 게 아니다.

출근시간에 쫓기는 이른 시간이 아니고 보니 전날 밤 잠들 때부터 긴장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었다.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수영장으로 간다. 보통 7시쯤 깨는데 그보다 늦게 깼더라도 그냥 눈 뜨는 대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부릉~. 수영장에 가서 이도 닦고 몸도 닦는다. 수영 후에는 기초화장에 선크림까지 바르고 집에 온다. 외출할 일이 없을 때는 세수도 않고 하루 종일 좀비처럼 지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아침 수영을 하고 보니 수영장에만 다녀오면 말씀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얼마나 괜찮은 루틴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수영을 하게 되니, 문득 옛날 친구 한 명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이웃 학교 남학생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 다닌 적이 있다.

이 모임은 남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전근 오신 나의 담임 선생님이 전근오시기 재직하신 그 남학교의 동료 선생님과 의기투합하시어 양교의 남녀 학생들로 구성하여 만든 모임인데, 그때가 나의 고1 시절, 1978년 가을이었다. 그 시절엔 학교 앞 분식집이나 빵집에 어느 학교 소속인지도 모르겠는 선생님들이 경찰처럼 느닷없이 등장하시어 사사로이 만나는 남녀 학생들을 적발하고 징계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모임을 만드셨던 두 분 선생님은 참으로 파격적인 사고를 하셨던 분들이었지.. 싶다.


아무튼 우열반 제도가 있던 그 남학교에서는 우반에서 '뽑힌' 아이들이, 우리 여학생은 그냥 담임 선생님이 이 반 저 반 수업에 들어가셔서 '독서 좀 하겠다' 싶은 아이들을 불러 모아진 학생 등 남녀 일곱 명씩 총 14명이 시작하였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수레바퀴 밑에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모모' '꽃들에게 희망을' '어린 왕자' '광인일기' 등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고 갑론을박 토론도 해 보았다. 남자아이들은 책을 읽지도 않고 와서는 허튼소리로 엉렁뚱땅 넘어가기도 했는데, 이성교제가 금지된 그 시절에 '독서'라는 주제를 갖고, 선생님도 부모님도 다 아는 그런 공공연한 모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러했던 모임이었는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사건처럼 우리 멤버 중 남자아이 한 명이 가출을 하고 학교도 나오지 않다가 결국은 자퇴하는 일이 생겼다. 모임에서 보는 사이였으니 그 아이가 그의 학교에서, 또 그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체 어리둥절했는데, 그 아이와 비교적 가까웠던 우리 학교의 여학생 한 명마저 독서 모임에서 탈퇴하는 등 상황이 묘하게 확대되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우리들의 독서 모임에는 늘 대학생 언니 혹은 오빠들이 배석하여 일종의 감시자 역할을 해 주었다. 두 분 선생님은 한 번도 우리 모임에 오진 않으셨지만 대신, 양교 출신 대학 신입생 몇 명을 섭외하시어 옵서버로 참석하게 하셨었다. 선생님이 아니라 선배를 통한 감시 감독이 있었다고 봐야겠다.


그런데 그때 어린 내 눈으로 보아도 우리들보다도 그 선배들이 우리의 모임을 더 즐기는 것 같았다.

그들은 대학생이었으니 우리들을 핑계 삼아 공공연하게 미팅과 소개팅을 하고 있지.. 싶었다. 겨울 방학 때는 선배와 함께 근교 산에도 가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도 했는데, 우리나 선배들이나 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특별한 추억들이 우리를 영원한 우정으로 꽁꽁 묶어둘 것 같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등 20대가 저물면서 남자아이들은 어디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바람결에나 소식을 듣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이과반 문과반 여기저기서 모여든 우리 여자 아이들도 같은 대학에 들어간 세 명만이 나중까지도 연락을 하는 사이로 남고 다른 친구들은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소식을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1998년 가을이었다. '옛 동창 만나기' 붐이 한 바탕 지나간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이 럽 스쿨' 같은 플랫폼을 통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이 다시 만나는 일이 온 나라를 휩쓸어도 나는 그런 유행과 담을 쌓고 지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짜리 딸아이와, 회사일로 늘 바쁜 남편과 살며 직장과 집안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늘 피로와 스트레스로 입병을 달고 살았다.


그 가을의 어느 날, 독서 모임의 여자 친구 한 명이 연락을 해왔다.

어찌어찌하여 그때 그 모임의 남자아이들과 연락이 되어 우리가 다 같이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로부터 20년이 지났으니 이제 다 모여보자.. 는 취지였는데, 나는 '지금, 벌써?'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집안 일과 직장, 아이 키우는 일로 '고단하기 이를 때 없는 나날 중에 아직 옛 친구를 그리워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생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추억의 친구들은커녕 당장 오늘 하루가, 또 다가올 내일이 과연 안녕할까 전전긍긍하며 살던 시절인데... 동창? 옛날 친구들?

그래도 친구의 거듭되는 권유에 참석하기로 결정.


강남에 있는 장소까지 가느라 강북에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가느라 늦게 등장하였는데....

우와~

일 일곱 살 때의 그 남자아이들은 중년이 되어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내가 서른일곱 살의 그들을 '중년'이라고 표현하니 우습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머리 한 끝에 살짝 새치도 보였던 중년의 아저씨들.


누구는 벌써 직장을 나와서 개인 사업을 한다고 하고,

누구는 정치인 쫓아다니며 뒷바라지를 한다고 하고,

누구는 곧 개업을 한다고 하고...

누구는 기러기 아빠....


그런데 대기업에 다닌다는 한 친구, 그가 특별히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독서모임에서 나와 비교적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만약 그가 고등학교 그 시절에 가출을 한 사람이 그였다면, 우리 모임에서 탈퇴를 해야 하는 여학생은 바로 나였을지도 모를, 굳이 작대기를 긋는다면 그와 나는 그런 사이. 그가 어느 대학을 나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한 것까지는 내게 소식이 입력되어 있었던 그런 친구. 그런 그였어도 그와 나는 결혼 후에는 더 이상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다. 사실 나는 결혼 이후, 집과 직장, 아이와 관련된 것.. 외에는 세상을 잊었다고나 할까. 그랬던 그를 다시 만났는데...

그가 글쎄... 골프를 치고 수영을 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너, 너.. 회사 생활이 무지무지 바쁘고 힘들다고... 개인 생활이 없다... 그랬었잖아?


아, 그때는 신입이었지. 직장 생활한 지 몇 년인데..

너도 이제 회사에서 고참 되지 않았냐?


머리가 멍해졌다.


고참? 직장에서 고참되면 가정생활도 널널해지나?

난 그렇지 못한데...


그 친구가 재수를 하는 바람에 나는 그의 상급생 누나가 되기도 하였다.

내가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아직 학생인 그에게 밥도 사주며 어서 졸업해서 잘 되라고 조언하며 응원도 했었다. 우린 똑같은 나이였고, 비슷한 시절에 대학을 다녔고 동시대를 살며 배우고 익히고 사회로 뛰어나갔다.

그렇게 너와 내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결혼하기까지는 남녀차별이 없었는데...

저 애는 지금 주말에 골프를 친단다.

저 애는 아침에 눈 뜨면 수영장 가서 몸 풀고 출근한단다.


아침밥은 누가 차려?

애들 등교 준비는 누가 해?


다 아내가 한단다.


아!!!

내 무릎이 척하고 꺾이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없는 나는 아침밥도 내가 차리고, 아이 등교 준비는 물론 등교까지 내 책임.

그러고 나서 헐레벌떡 출근을 한다. 일하는 틈틈이 집안일 생각하고, 퇴근 30분 전부터는 퇴근 후 동선과 할 일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복기한다.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를 픽업하고, 피아노 학원에 데려가고, 그 사이 나는 장을 보고 아이의 내일 준비물 챙기고 다시 아이 학원으로 가서 아이 손 잡고 급한 마음으로 집으로 간다. 어서 가서 저녁을 준비하여 먹이고, 숙제 봐주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워야지. 그렇게 하고 나면 나보다 더 피곤한 모습으로 귀가하는 남편을 맞고, 직장에서 겪은 일, 서로의 하루를 다 나누기도 전에 곯아떨어져서는 이튿날 아침,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깨는 그런 매일을 살고 있는데... 운동이라고?

출근 전에 아침 수영을 한다고?



우리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해의 여름이었다.

아이를 음악캠프에 보낼 일이 생겼다. 무려 4주간의 일정.

세상에... 4주 동안 우리 집에 딸아이가 없다는 사실.


이 엄청난 해방감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내가 4주간의 직장 휴가를 받은 것도 아닌데, 집에 챙겨야 할 아이가 부재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뭔가를 배워 보람 있게 보내야지. 그런 마음으로 등록한 것이 '퇴근 후 수영장' 다니기였다.

여름 특별프로그램으로 4주 동안 네 가지 영법을 다 배운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 시작한 것이었다.


발차기부터 시작했던 특별 강습은 4주가 끝나가도 호흡도 못하고 엉망인 상태였다.

같이 배우며 친구가 된 어떤 이가 '다음 달에도 등록하실 거죠? ' 했다.

아이가 돌아오면 다닐 수 없을 텐데.. 싶었지만 새로 사귄 친절한 그녀에게 거절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숨 쉬는 것까지만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한 달을 새로 등록하였다. 그런데 이 등록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새로운 한 달, 또 한 달...


아이가 중학생이던 그때의 내 마음은 이랬다.

아이와 나는 아침에 학교와 직장으로 헤어졌다가 저녁에 만나 잠들 때까지 단 몇 시간을 가족으로서 보낸다. 그런데 그 몇 시간 동안에도 아이는 학원을 가거나 하면서 집을 비우기도 한다. 아이가 학원 갈 때 나도 수영장을 다녀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설령 그 시간이 딱 맞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엄마가 저녁 수영을 다닐 터이니 그 시간 동안 잘 지내야 한다'는 다짐을 아이에게서 받았다.

알아서 잘 지내겠다는 아이의 맹세는 사실 내 귀의 캔디 같은 것이었다.

설령 내가 없는 동안 아이가 방만하게 시간을 보낸다 하여도, 내가 돌아오면 다시 제자리 돌아가겠지.. 하는 믿음까지 동원하면서 결혼 후 나의 첫 사생활인 수영장 다니기가 40대 중반에 시작된 것이었다.


초보일 때의 수영 강습은 삶과 죽음의 결투다.

숨을 제대로 못 쉬면 물을 먹고, 코가 맵고, 엑켁켁..

물에 떠서 가야 하는데 벌떡벌떡 일어서기 일쑤. 그러다 보니 미역줄기 같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인간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살겠다고, 숨을 쉬어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허우적 대다 보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온갖 상념들이 다 씻기는 듯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이에 대한 걱정은 물론, 직장에서 있었던 일까지 다 싹 지워버리게 되었고, 오직 숨 쉬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발버둥 친 몸은 녹초가 되어 꿈도 못 꾸는 깊은 잠을 자게 해 주었다. 이게 이게.. 청소년 자녀를 둔 걱정 많은 부모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체육 프로그램인 것이었다.

게다가 엄마가 집을 비우니 아이도 은근히 좋아하며 스스로 알아서 (사실 알 수 없었지만) 잘 지내는 듯하여 왠지 집안이 한결 평안해지는 듯했다.


수영장을 다니면서 종종 그때 그 친구를 생각하곤 하였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수영장 다니기, 이제 나도 하고 있어... 하면서 말이다.



요즘, 아침 수영을 하러 가보면 레인 하나는 걷기만 하는 레인에 할머니, 아주머니들 차지다.

접영까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형편이고 보니 뭐 더 배우고 익히려는 마음보다는 편안하게 놀자.. 는 마음이 더 크다. 게다가 나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진짜 할머니. 그들 틈에 끼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설렁설렁 걷노라면 그 여유가 얼마나 좋은 지 모른다.


그 애도 은퇴를 하였을까?

그때는 남녀 불평등이 가득했었지만, 이제는 똑같아지지 않았나...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문득 묻고 싶어진다.


야, 너, 지금도 수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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