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반 홍교사 Jan 11. 2024

아이의 심부름

-반짝이는 네 눈빛

오늘 점심 먹고 먹은 그릇을 정리하는데 첫째가 싱크대로 자기 그릇을 들고 오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조금 더 조심하라고 말하고 말걸 거기다가 또 하나 덧붙였다.

"그냥 싱크대에 넣으면 되는데 그걸 흘렸어!" 가시 돋친 사족을 붙여버렸다.

풀이 푹 죽어 내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보고 속으로 '아뿔싸!' 했다. 그 말은 하지 말걸.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우유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나갈 때 마트에서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아하! 아이에게 부여할 미션이 생각났다.


"첫째야~ 엄마 심부름 좀 해줄래?"

"응? 뭐~?"

째의 눈이 반짝이는 게 느껴진다.


"음.. 우유가 없네. 우유 좀 사주면 좋겠어~ 또 먹고 싶은 거 있어?" 물어보니, 대뜸 동생에게도 먹고 싶은 게 있는지 의기양양하게 물어본다.


'형아가 사다 줄게~'하는 그런 으쓱함이다.


우유, 과자 2개를 사기 위해 첫째는 엄마 카드와 장바구니를 챙기고 집 앞 마트로 갔다.

그리고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엄마~~"

엄청 신나게 들어올 줄 알았는데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들고 오기가 너무 힘들었어." 하며 세상 힘든 듯 지쳐서 들어오는 첫째.


"그렇지. 많이 무거웠지? 너무 애썼네~~"


사온 우유와 과자를 꺼내며 이 과자가 얼마나 꺼내기 힘든 위치에 있었는지 손을 휘저으며 알려주는 아이.


"우와, 진짜 구석에 있어서 찾기 힘들었겠네. 대단하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귀한 과자네"



초등학교 3학년 첫째에게 심부름은 단지 엄마가 귀찮아서 아이가 대신하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아직은 혼자 무언갈 하는 것이 많지 않고, 혼자 한다 하더라도 불안하다는 이유로, 실수한다는 이유로 어른들의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은 때, 혼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그걸 해냈을 때 느끼는 성공 경험과 인정은 '그깟' 심부름이 아니라, 큰 보상이 되는 것이다.


사 온 과자 중 하나가 매콤한 맛으로 잘못 골라왔다고 당황했던 너. 덕분에 다른 종류의 맛도 먹어볼 수 있으니 괜찮아.  네 덕분에 우유에 과자까지 맛있게 잘 먹었어. 너무나 고마웠어.


그렇게 우리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조금씩 자라난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