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콧물이 살짝 있고, 코가 간질간질해서 재채기가 계속 나오고 목이 살짝 따끔거리는 것이 감기 기운인 것 같았다. 환절기만 되면 몸이 급하게 신체 모드를 변경해야 해서인지 썩 가뿐하지 않은데, 어김없이 살짝 감기 기운인 것 같아, 오늘 일정을 이른 아침 급하게 취소했다.
남편이 배려를 해 주어서 아이들과 함께 키즈카페에 간 사이, 나는 집에 있다가 집정리와 가습기 청소를 좀 해두고는 집 밖으로 나왔다.
몸에 좋은 걸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집 근처 한식집에서 설렁탕을 한 그릇 먹고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어 운동삼아 걸어가다가 빵집에 들렀다.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지만 빵도 하나 사고, 아이스커피도 한잔 사가지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주인분께 고른 빵을 내밀고는, "이거랑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잔 주세요."하고 말씀드렸다. 나 다음으로 바로 남자분들이 우르르 들어오셔서 라떼를 시키는 것 같았는데, 헷갈리셨는지 아이스 까페라떼를 나에게 내미시는 거다. "아,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인데요?" 그랬더니, "아, 내가 왜 라떼를 만들었지?" 하시다가 잠시 멈칫하신다.
"주문서에도 아이스 카페 라떼인데? 서울페이로 결제했죠? 서울페이는 환불이 안될 텐데" 자꾸 이런저런 말을 건네시면서 뜸을 들이신다. 아마 '돈 바꿔주기도 애매한데 그냥 마시면 안 될까?' 그런 것 같았다. 전에 같았으면, "그냥 이거 마실게요"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뒷사람과 주인을 배려해 후다닥 사라졌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었고, 나는 제대로 주문을 했고, 주인분의 실수로 잘 못 나온 것이니,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분이 그냥 마시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잠깐 행동을 멈춘 사이에 내가 말했다.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켰고,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어서요."
주인 아주머니는 굉장히 기분이 나쁜 표정과 행동으로 아메리카노를 다시 만들며, 500원을 거슬러 주셨다. 한순간 진상 손님이 된 것 같았지만, 내가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고 싶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주문도 제대로 했고 돈도 제대로 냈다. 아주머니가 실수하신 것이고, 나는 그저 실수로 잘 못 나온 라떼보다 내가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뿐이다.
예전에 나라면 분명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지만, 나보다 먼저 상대방을 배려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재료비와 그 사람의 무안함을 내가 대신 덮어주고 짊어지려 했을 것이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음료가 아니었는데도, '뭐 이거 마시면 되지'하고 적당히 나 자신과 타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 다른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나를 더욱 챙기고 아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하면 안 된다. 그건 나를 아껴주는 것이 아니라, 민폐고 진심 진상일 것이니까 말이다.
'정당한 요구를 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그런 정당한 요구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를 아끼고 존중해 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도울 줄 아는 마음 넓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